언어로 변주한 글렌 굴드의 피아노 곡… 서준환 ‘골드베르크 변주곡’

입력 2010-09-17 17:50


‘언어로 음악을 변주한다’는 명제는 과연 성립하는가? 글렌 굴드가 연주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면 어떨까.

소설가 서준환(40)이 등단 9년 만에 낸 첫 장편 ‘골드베르크 변주곡’(문학에디션 뿔)은 바흐의 연주곡에 대한 변주이자, 실존인물인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에 대한 변주다. ‘언어로 음악을 변주한다’는 설정은 소설 속의 주인공 길렌 골드먼트의 야심일 뿐 아니라 저자 자신의 야심인 듯 보인다.

소설에는 골드베르크 연주곡을 변주할 15명의 피아니스트가 등장한다. 작곡가, 가수, 행위예술가, 시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은 그 이름부터가 글렌 굴드(혹은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대한 변주다. 이들의 이름은 주인공 길렌 골드문트를 비롯, 골란 골드버그, 글렘 고든, 글렌다 주드, 뮬렌 구드, 글리오 골리에시아스, 괴란 골드 등. 그리고 언어에 의한 제15변주를 진행하는 열다섯 번째 예술가의 이름이 글렌 굴드다.

주인공 길렌 골드먼트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대한 성공적인 해석으로 명성을 떨친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인물. 글렌 굴드처럼 길렌 골드먼트도 소설 속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유명해진 인물이며, ‘음악의 진화’라는 명제를 거슬러 피아노를 통해 피아노의 유래가 된 악기인 하프시코드로 돌아가고자 한다는 점도 굴드와 같다. 이를 위해 작 중 길렌은 나머지 열네 명의 변주가를 찾았다. 그러나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들의 존재는 점점 얽히고설키며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소설에 나와 있듯,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골드베르크’라는 이름은 익명의 호칭에 다름 아니다. 바흐가 카이제를링크 백작의 음악 시동 골드베르크에게 선사한 곡이라는 설은 최근 신빙성을 의심받고 있으며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골드베르크는 주제 선율과 무관한 인물이다. 결국 익명이며 타자의 이름인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글렌 굴드의 ‘타자’들이 제각기 변주된 이름으로 변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제1변주부터 제15변주에 이르는 글렌 굴드의 변주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며 글렌 굴드에게 바쳐지는 찬사의 다른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언어는 선율의 아름다움에서 음악에 이르지는 못하겠지만, 그 명징함과 상상력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 가능하지 않으리라 믿어졌던 ‘언어에 의한 변주’는 언어로만 이뤄질 수 있는 풍요로움과 여백으로 가득 차 있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