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이성이 공존하는 신세계로 떠나는 여정… 자크 아탈리 ‘깨어있는 자들의 나라’

입력 2010-09-17 17:50


역사의 라이벌은 늘 동시대에 태어난다. 문학적 거장은 그 시대를 절대로 놓치지 않는데 ‘살아 있는 프랑스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는 자크 아탈리(67·사진)도 예외는 아니다.

“이 이야기는 역사상 딱 한 번 있었던 일로서 기독교와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조화를 이루며 살았던 20년 동안의 시절에 관한 것이다. 때는 역사상 딱 한 번, 딱 한 곳에서 유일신을 믿는 세 개의 종교가 서로를 존중하고 찬양하며 서로에게서 자양분을 섭취하는 길을 택했다.”(7쪽)

12세기 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는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가 공존하던 평화의 땅이었다. 그러나 북아프리카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침입하며 오랜 공존의 시대는 깨지고 만다. 자크 아탈리는 중세에 실존했던 유대 철학자 마이모니데스(모세 벤 마이문)와 이슬람 철학자 아베로에스(이븐 루시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두 사람은 암흑의 나라를 피해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우주의 비밀을 간직한 책을 찾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 스페인에서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매혹적인 풍경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가 이어지며 종교와 이성의 공존에 대한 지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탈무드에 따르면 성전이 파괴된 후로 오로지 아이와 미친 자만이 예언자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이도 아니고 미치지도 않았지만 가끔 예언자처럼 말하는 누군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301쪽-모세의 말)

“철학과 종교는 각자 자기 영역에 머물러야 하며 이것이 양 분야가 합의한 조건입니다. 저는 아리스토텔레스만큼 예언자에 가깝게 도달한 인간을 알지 못합니다. 인간 중에서 그만큼 완벽한 인간은 없습니다.”(302쪽-루시드의 말)

두 사람은 현자와 만나기 위해서 수많은 질문들과 부딪치며 그들 나름의 답을 하나씩 제시해 나간다. 그러나 그들의 여정 한가운데서 ‘깨어 있는 자들’의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이야기는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들 자신만 안다고 여겼던 비밀의 책을 찾는 순례가 누군가에 의해 추적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범인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책의 행방은 묘연해지며 이야기는 미궁에 빠진다. 그들을 좇는 ‘깨어 있는 자들’은 어떤 이들이며, 살인사건의 범인은 과연 누구인가.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책은 정말로 존재하는가.

서로 다른 종교에 대한 거부와 이성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들로 인해 두 쪽으로 찢겨버린 곳이라는 점에서 12세기 스페인과 우리가 사는 지금 여기는 다르지 않다. 자크 아탈리는 광신도가 지배하는 중세 스페인의 한복판에서 현재를 돌아보고 있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