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홍규 사기극에 공무원·언론·시민단체까지 나팔수 ‘족쇄된 국새’

입력 2010-09-16 21:37

거의 성공할 뻔했던 제4대 국새 제작단장 민홍규씨의 ‘대국민 사기극’에는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공무원들의 조직적인 비호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민씨에게 수여된 훈장이 박탈되고, 내년 상반기에 5대 국새가 새로 만들어진다.

행정안전부는 16일 황인평 제주부지사 등 제4대 국새 제작에 관여한 전·현직 공무원 8명을 직위해제 등 중징계하기로 했다.

또 서울지방경찰청은 민씨에 대해 사기·사기미수 혐의를 적용,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또 국새 제작자 선정 전 민씨에 대한 홍보기사를 써주고 금도장 3개와 현금 1400만원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A경제신문 부장 노모(44)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대(對)국민 사기극 어떻게 가능했나=민씨의 사기극은 언론과 시민단체를 등에 업은 여론몰이와 공무원들의 지원사격이 있어 가능했다.

우선 민씨는 제4대 국새제작단장에 선정되기 위해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를 적극 활용했다. 민씨는 전통비법으로 국새를 제작할 능력이 없음에도 시민단체를 통해 전통적인 방법으로 국새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을 조성했다. 민씨는 또 일부 기자들에게 금품 등을 제공하면서 자신이 전통기술을 지닌 장인으로 소개하도록 유도했다.

이 같은 민씨의 여론 조작에 깜박 속은 행자부 공무원들은 민씨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민씨를 국새단장으로 내정했다. 이후 행자부는 민씨를 조직적으로 비호하기 시작했다. 행자부는 민씨가 국새 모형 공모전에서 기한 내에 작품을 제출하지 못하자 공모 기한을 임의로 6일 연장해줬다. 행자부는 또 민씨가 서울시 무형문화재 신청에서 탈락한 사실을 알면서도 그를 제작단장으로 선정했다. 이 과정에서 행자부 국가기록원은 민씨가 석불 정기호 선생의 맥을 잇는 옥새 장인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들 공무원은 민씨의 사기극이 들통 나기 전에 이미 국새가 전통방법으로 제조되지 않았고 재질 역시 5대 금속 합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은폐했다. 이런 지원에 힘입어 민씨는 국새 제작단장의 지위를 이용해 금도장을 비싼 가격에 판매하는 한편 목불 선생 등 권위 있는 장인의 후계자인 것처럼 대중을 속일 수 있었다.

◇연루된 전·현직 공무원 8명 중징계=행안부는 민씨의 사기극을 방조했거나 적극 지원한 전·현직 공무원들을 징계하기로 했다. 2007년 행자부 의정관으로 재직하며 국새 제작을 총괄했던 황 부지사는 민씨로부터 금도장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직위해제 후 중징계 처분을 받는다. 민씨로부터 국새를 납품받을 당시 의정관이었던 김국현 지방재정공제회 이사장은 사직 처리키로 했다.

그러나 민씨로부터 금도장을 받은 것으로 드러난 최양식(당시 행자부 제1차관) 경주시장은 선출직 공무원이어서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행안부는 민씨에게 수여한 국민훈장 동백장을 회수하고 국새 제작단원 5명에 대한 장관 표창을 취소하기로 했다. 민씨가 대표로 돼 있는 국새문화원 법인 설립 허가도 취소하고 특별교부금 7억원도 회수할 방침이다.

◇내년 상반기 새 국새 만든다=행안부는 사기극으로 끝난 4대 국새를 폐기하고 내년 상반기에 5대 국새를 만들기로 했다. 행안부는 다음달 중 공청회를 열어 국새 제작 기본계획을 수립한 뒤 11월에 국새제작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다. 국새 재질은 금 합금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신소재를 이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제작방식은 전통식이 아닌 현존하는 최고의 제작기술을 이용하기로 했다.

황일송 전웅빈 기자 il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