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문일] 大洋海軍이란 환상

입력 2010-09-16 17:47

20세기 중반까지 해전(海戰)은 적 함대의 주력을 격멸하는 함대결전 방식이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살라미스 해전(BC 480),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을 무찌른 악티움 해전(BC 31), 나폴레옹의 영국 정복을 좌절시킨 트라팔가 해전(1805),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러시아 발틱함대를 저지한 쓰시마 해전(1905) 등.

해전 방식은 2차세계대전을 계기로 바뀌었다. 영국 해군에 크게 뒤떨어진 독일은 함대결전을 피하고 잠수함으로 영국의 해상보급로 차단을 노렸다. 일본 연합함대는 미드웨이 해전(1942)에서 미국 항공모함 탑재기의 집중 공격을 받고 궤멸했다. 종전 후 해전의 사상(思想)은 일변해 거함대포(巨艦大砲)주의가 쇠퇴하고 항공모함이 해군의 총아가 됐다. 또 수중 전력의 중요성에 눈을 떠 주요국들은 잠수함 개발과 함께 잠수함을 잡는 대잠수함(ASW)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힘을 기울였다.

항공모함은 해전뿐 아니라 현대전의 사상까지 변화시켰다. 대부분 국가의 수도는 연안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항공모함 탑재기의 공격 거리 안에 든다. 항공모함에서 육지를 공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두 차례 이라크 전에서 전쟁개시와 함께 수도 바그다드에 맹폭이 이뤄진 데서 보듯 항공모함은 이동하는 전장(戰場)이다. 이처럼 세계 어느 해역에서건 작전을 펼 수 있어야 대양해군(Ocean Navy)이다. 현재 이 같은 능력을 가진 나라는 항모 12척을 보유한 미국이 유일하다.

우리 해군이 ‘대양해군’이란 구호를 당분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반성이다. 호전적인 주적(主敵)을 눈앞에 둔 데다가 양쪽에 강국을 끼고 있는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입장에서 볼 때 당분간이 아니라 통일될 때까지는 쓰지 않아도 좋을 말이다.

이지스함 한두 척 갖고 대양해군을 운위하면 안 된다. 주변국을 자극할 뿐이다. 우리보다 해군력이 월등한 일본도 그처럼 거창한 구호는 쓰지 않는다. 원유 공급루트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시레인(Sealane) 방위’를 말할 뿐이다. 중국도 해군의 현주소를 ‘천람(淺藍)’으로 규정한다. 근해 방어보다 조금 나아간 단계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가면 ‘심람(深藍)’이다. 우리의 대양해군과 같은 개념이지만 중·일은 모두 ‘원양(遠洋)해군’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우리 해군이 그동안 너무 큰 ‘대’자 옷을 입고 있었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