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고교등급제 제동, 정책조율 계기로
입력 2010-09-16 17:41
고려대가 2009학년도 수시모집 일반전형에서 정부가 금지한 고교등급제를 적용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창원지법 제6민사부는 15일 2009학년도 고려대 수시 2-2 일반전형에서 떨어진 수험생 24명의 학부모들이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학교 측은 위자료 700만원씩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고려대가 의도적으로 일류고 출신 학생들을 뽑기 위해 고교별 학력차를 반영한 점이 인정된다”며 “이는 시험이나 입학전형의 목적 등에 비춰볼 때 현저하게 불합리하거나 부당해 재량권을 일탈 내지 남용한 경우에 해당돼 위법하다”고 밝혔다. 실제 전형 결과에서도 내신 1, 2등급 지원자가 떨어지고 내신 5, 6등급 지원자가 다수 합격했다는 것이다.
글로벌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수 자원을 뽑으려는 대학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일반고와 특수목적고를 비롯해 전국 각 고교 사이에 학력 격차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학 입시는 페어플레이 정신에 입각한 공정성을 기반으로 치러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수험생들 모르게 고교별 학력차를 반영한 고려대 입시는 잘못됐다는 지적을 면할 수 없다. 고려대가 재판 과정에서 영업비밀이라며 내신성적 산정 방법을 공개하지 않은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줄소송 등 후폭풍이 예상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수시전형에서 탈락한 학생의 추가 소송 등 후속조치가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수험생이 진로와 적성에 맞게 공부하고 비교과 활동을 해왔는지 평가하는 입학사정관제가 고교등급제를 심화시킬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수험생과 학부모들도 많다. 다른 대학들도 암암리에 고교등급제를 시행했을 것이라는 의혹도 있다.
정부는 여론을 폭넓게 수렴해 불신과 혼선을 최소화는 방향으로 대입 정책을 조율해야겠다. 정부는 수험생 학부모 교사 대학들이 혼란을 느끼지 않도록 3불 정책(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에 대한 입장을 보다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