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변재운] 체벌, 필요하다면 해야겠지만

입력 2010-09-16 17:48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일상사였다. 책상마다 재떨이가 놓여있었고 애연가들은 아예 담배를 입에 물고 일을 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은 흘러 다니는 담배연기가 고역이지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때는 영화관이나 버스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고속버스에서 옆 자리 여성이 아기를 안고 있는데도 흡연 남성은 태연히 담배를 피웠고, 아기 엄마는 말도 못한 채 담배연기가 아기에게 다가오지 않도록 연신 손을 휘저었다. 흡연의 권리가 담배연기를 맡지 않을 권리보다 우위에 있었기 때문인데, 이제 와 생각하면 참으로 미개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어떻게 그런 사회적 통념이 가능했는지 의아하기까지 하다.

사회적 통념은 그때에 옳을 뿐

미개했던 일이 그뿐일까. 여성에 대한 극심한 차별이 사라진 것도 그리 오래지 않다. 여자가 배워서 무엇 하느냐며 학교를 안 보내 지금 할머니 반열에 든 여성들은 초등학교 졸업자가 귀할 정도다. 가정 폭력도 적지 않아 심지어 ‘북어와 여자는 두들겨 팰수록 부드러워진다’는 말까지 있었다. 그래도 여자는 참고 사는 게 미덕이었고 딸을 시집보낸 아버지도 ‘출가외인(出嫁外人)’이라며 이혼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참으로 아둔한 존재다. 사회적 통념이라는 것은 또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그래도 우리 사회가 꾸준히 바른 방향을 찾아가는 것을 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국가가 발전하면서 그만큼 국민의 의식문명도 계속 성장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는 또 지금 당연하게 생각되고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것이 한참 후에는 미개했던 기억으로 바뀔 수도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서울시교육청이 9월부터 서울의 모든 초·중·고교에서 체벌을 금지한 데 이어 인천시교육청도 그제 지역 내 각급학교에 공문을 보내 체벌을 금지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반대 목소리도 여전하다. 일부 교사들은 체벌 금지가 현장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라고 말한다. 요즘 학생들이 얼마나 통제 불능인지 겪어보면 그런 한가한 소리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지난달 19일 서울시내 고교 교장 3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체벌 없는 학교 만들기’ 특강에서는 40여명의 교장이 반발하며 퇴장했다고 한다.

어차피 체벌은 사라질 유산

체벌 유지 주장이 이처럼 큰 목소리로 나올 수 있는 우리의 현실이 서글프다.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체벌을 금지하고도 학교가 잘 운영되는데, 우리는 왜 체벌이라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통제가 가능하다는 것이지 모르겠다. 물론 체벌 금지가 온정주의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정학이나 퇴학 등 더 강력한 제재로 통제를 해야 한다. 혹자는 퇴학을 시키기보다는 체벌을 해서라도 가르치는 게 스승의 도리라고 말하지만 다분히 낭만적인 얘기다, 춤바람 난 아내와 이혼하기보다는 때려서라도 버릇을 고쳐 데리고 사는 것이 사랑이라는 논리와 흡사해 보인다.

체벌에 대한 학부모들의 생각도 이중적인 것 같다. 70%가량이 체벌에 찬성한다지만, 체벌 대상은 내 아이가 아니라 내 아이의 공부를 방해하는 다른 아이들이기 십상이다.

인체에 물리적 충격을 가해 고통을 주고, 이를 통해 사람을 통제하는 체벌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다. 그때는 우리에게 그 같은 미개했던 과거가 있었다는 사실이 의아하고 부끄럽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벌 금지가 시기상조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면 당분간 계속해야 할 것이다. 대신 우리나라는 아직 학교체벌이 필요한, 그래야 학생들의 통제가 가능한 수준의 나라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아니면 우리 민족의 성향이 원래 그렇다고 생각하든지.

변재운논설위원 jwb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