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이전 한문 기독서 발굴 전래부터 포교까지 뿌리 밝힌다

입력 2010-09-16 20:15


한국 기독교 신앙 근원 탐구·번역하는 한학자 오세종 목사

평생 한학을 연구해 온 60대 목회자가 제자 목사들과 함께 기독교의 조선 전래 과정을 기록한 1920년대 한문 서적을 한글로 번역 출판했다. 우리나라 초기 기독교 관련 자료를 수집·분석해 이 땅 기독교 사상의 뿌리를 찾겠다는 오랜 노력의 결과물이다.

무불달(無不達) 오세종(63·예수원교회) 목사를 최근 서울 필운동 배화여대에서 만났다. 그는 이 학교에서 실용한문을 강의하고 있다. 목회자들에게 ‘훈장 선생님’으로 불리는 그는 2000년 4월 성실교회 안에 설립된 성실서당의 초대 훈장을 맡아 지금껏 이끌고 있다. 11기 과정이 진행 중인 현재까지 300여명이 서당을 거쳐 갔다.오 목사는 2002년 12월 성실서당 출신을 중심으로 ‘목회자 한시인회’를 만들었고, ‘첫 한시를 짓는 마음’이란 한시집도 냈다. 그리고 2006년 6월 한문으로 된 기독교 사료를 모으고 번역하기 위한 한국기독교사료연구소를 설립했다. 사료연구소는 본격적인 첫 작업으로 민속학자 이능화가 1925년에 쓴 ‘조선기독교급외교사(朝鮮 基督敎 及 外交史)’ 중 하편을 번역, 최근 ‘조선 기독교와 외교사’란 책으로 냈다. 1832년 개신교 최초 선교사 카를 귀츨라프가 조선을 찾았을 때부터 1920년대 중반까지 상황을 다뤘다.

번역에는 100여명의 사료연구소 회원 중 31명이 동참했다. 성실서당에서부터 함께 수학한 목회자들이 대부분이고 목회자 사모, 주부, 대학생 등도 일부 동참했다. 오 목사는 “한문 해독 능력이 우수한 베테랑급 회원들로 작업을 진행했지만 회원 간 수준 차가 있고, 용어 사용이나 서술 방식이 조금씩 달라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말했다.



10년 전 걸음마 단계인 천자문부터 시작해서 사서삼경(四書三經), 한시 작법 등의 단계를 차례로 밟아나가 고서 번역까지 해낸 것이다. 이는 오 목사가 성실서당 설립 때부터 구상해 온 일이기도 하다.

수많은 서적 중 왜 이능화의 조선 기독교와 외교사를 택했을까. 이능화는 친일 행적 논란이 있는 데다 불교도이기도 하다. 오 목사는 “이능화의 저서 중 ‘조선불교통사’ ‘조선무속고’ 등 대부분이 번역됐는데 이 책만 되지 않았다”며 “특히 1920년대 후반 백낙준 박사가 영문으로 ‘한국 그리스도교사’를 발간하기 이전 한국 사람이 쓴 기독교 통사는 이 책이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서양 선교사들의 시선이 아니라 조선인의 시각에서 기독교 유입 과정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귀중한 자료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능화는 위정척사파(衛正斥邪派)의 입장에서 기독교 전래를 ‘국경을 넘어오는 침략’으로 바라봤다. 다만 조선왕조실록 비변사등록 일성록 문헌비고 등 사료에서 관련 부분을 발췌·편집하는 방식을 취해 조선 말기의 굴욕적 외교사와 초기 기독교 전래과정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정리했다고 한다. 책 후반부에 가면 계급타파, 제사 및 장례의식 간소화, 여성풍속의 변화, 교육과 병원시설 확충 등에서 기독교의 역할을 다소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부분도 있다. 책은 당시 기독교 각 교단의 현황을 통계로 제시한 뒤 개신교와 가톨릭을 비교하는 것으로 끝난다.

“가톨릭은 선교를 하지 않고 단지 끼리끼리만 서로 이끌고 있지만, 개신교는 민중에게 전교(傳敎)하는 일이 성행하고 있다. 게다가 반드시 학교와 병원 등 사회사업을 병설하며 포교의 기관을 삼고 있으니 이것이 서로 간에 다른 점이다.”

사료연구소는 다음 작업으로 R J 토머스 선교사(1839∼1866)가 대동강변에서 순교한 사건을 다룬 ‘양요잡기(洋擾雜記)’ 번역을 계획하고 있다. 탁사 최병헌, 애산 김진호 목사 등의 문집, 정준모 장로의 성경 한시집 ‘경제사율(經題詞律)’ 등도 대상이다.

오 목사는 이런 번역 작업을 “우리 기독교 사상의 뿌리를 찾기 위한 일”로 설명했다. 한학자였던 아버지 오지섭 목사에게 여섯 살 때부터 한문을 배운 그는 고교 2학년 때 이미 한시를 짓는 수준이 됐다고 한다. 그때 아버지가 붙여주신 호가 ‘무불달’이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는 뜻이지만, 오 목사는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겸손의 의미로 지금껏 간직해 왔다. 그렇게 계속해서 한문을 공부하고, 또 목회자의 길을 걸으며 그는 우리 기독교 사상의 큰 공백을 발견했다.

“1920년대 이전 우리 선조들이 쓴 글 중에 한글로 번역되지 않은 고서와 고문서가 200만권에 달한다고 합니다. 기독교 관련 부분도 아마 수천에서 수만권은 될 겁니다. 이것이 번역되고 연구되지 않으면 기독교 사상의 큰 부분이 땅속에 그냥 묻혀 있게 되는 것이죠.”

오 목사는 특히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 번역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중국에 온 서양 선교사들이 쓴 한역서학서가 조선 후기 실학파들은 물론 최병헌, 신석구, 양주삼 등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의 신앙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쓰여진 책들은 어찌 보면 표피적인 것이죠. 우리 신앙과 신학의 유산을 회복해야 오늘날의 신학도 제대로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