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작은 것의 아름다움
입력 2010-09-16 18:04
사무엘상 9장 21절
하나님은 참 작은 것을 좋아하십니다. 이스마엘이 아닌 이삭, 에서가 아닌 야곱,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요셉과 베냐민, 세라가 아닌 베레스, 므낫세가 아닌 에브라임, 아론이 아닌 모세….
성경의 역사는 ‘작은 자들의 승리’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작은 얘기들이 많습니다. 본문 말씀은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첫 임금을 뽑기 위해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사울을 택하는 장면입니다. 그때 이스라엘에 사울처럼 준수한 자가 없고 그처럼 큰 자가 없다고 하였으니 꽤 쓸 만하였나 봅니다. 그런데도 사울은 자신을 이스라엘에서 가장 작고 가장 미약하다고 하였습니다. 그 뒤 사무엘이 백성들 앞에서 왕을 뽑아 공포하기 위해 사울을 찾았을 때 그는 행구(行具) 사이에 숨어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사랑스런 얘기입니까.
하나님은 반하셨을 것입니다. 그 겸손과 그 순수가 결국 암몬 사람을 크게 이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이 점점 커졌습니다. 작은 것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최고가 되어야 했습니다. 정치도 자기가 하고, 제사장도 자기가 하고, 군대도 자기가 거느리고자 했습니다. 또 어린 다윗을 질투하다 못해 미쳐버렸습니다. 하나님은 큰 사울을 싫어하셨습니다.
신약시대에도 사울이라는 큰 자가 있었습니다. 사울은 유대 이름으로 ‘요구하다’라는 뜻입니다. 요구는 누가 할 수 있습니까. 힘 있는 자가 하는 것입니다. 그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 힘으로 예수의 무리들을 엄청나게 핍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큰 힘이 있을 때 그는 위대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의 빛으로 눈이 멀게 된 후 예수를 만나자마자 작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바울이 된 것입니다. 바울은 ‘작은 자’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또 반하고 사랑하시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사랑의 불길에 바울은 타기 시작하였고 그는 영원히 큰 자로 남게 되었습니다.
작은 것의 아름다운 얘기는 구약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작은 소알 성은 보존되었습니다. 장자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도토리나무는 재목으로는 쓸모가 없고 배를 만들면 물을 먹어 가라앉고 기둥을 만들면 허약하여 비틀어지고 관을 만들면 쉬이 썩고 자루를 만들면 부러진다. 쓸모가 없기에 거목으로 장수할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도 도토리나무처럼 적당하게 쓸모가 없어야지 크고 장수할 수 있는 법이지, 재기가 넘쳐 쓸모가 많으면 일찍 베임을 당한다.”
그러나 재기가 넘친다고 반드시 일찍 죽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쓰임이 많다고 일찍 베임을 당하는 것은 더욱더 아닐 것입니다. 작아지는 비결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됩니다.
현대에는 최고가 너무나 많습니다. 큰 자가 너무도 많습니다. ‘전쟁이다. 너 안 죽으면 나 죽는다’는 식입니다. 둘째 없는 첫째가 어디 있으며, 낮은 곳 없는 높은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이제 좀 작은 자, 낮은 자로 살아갑시다. 그렇다고 무능하게 살자는 말은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란 말이 있고 10절에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지혜를 터득하고 나면 곧 큰 자의 길이 거기에 있음을 알 것입니다. 작은 것, 약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것들입니다. 작은 자, 약한 자는 하나님의 연인들입니다.
구자영 목사(안성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