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심재수 (2) 점집 유혹에서 벗어나 새벽기도 참석
입력 2010-09-16 17:58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점집이냐, 예배당이냐. 점을 보느냐, 새벽예배를 드리느냐.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확연히 달라진다.
“그 힘든 새벽기도를 어떻게…. 새벽기도를 드리고 나면 온종일 졸리고 피곤할 텐데. 나는 ‘종달새 형’이 아니라 ‘올빼미 형’ 체질이라서 힘들어요.”
“그럼 제가 먼저 시작하지요. 당신은 나중에 결정하세요.”
아내가 먼저 용기를 냈다. 우리 부부는 무당집 앞에서 몇 시간 동안 논쟁한 후 ‘새벽기도 참석’이란 결론을 얻어 귀가했다. 이것도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만약 그날 점집에 들어갔더라면 평생 귀신의 계략에 휘둘리는 삶을 살았으리라.
아내는 이튿날부터 만리현성결교회 새벽기도회에 참석했다. 나는 새벽 4시 30분에 아내를 깨워 교회에 보내고 다시 잠이 들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아내가 새벽 시각에 일어나지 못했다. 몸살이 난 것이다.
“내가 새벽기도회에 못가면 당신이라도 참석해야 하지 않겠어요?”
“내가?”
“지금 우리에게는 비상기도가 필요해요.”
아내의 말이 옳았다. 회사와 가정이 모두 붕괴될 초비상 사태인데 한가롭게 늦잠을 자고 있다니…. 고통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나인데, 왜 아내가 책임을 진단 말인가. 잠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사업을 일으킨단 말인가. 말로만 힘들다고 하소연할 뿐,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무능한 존재가 아닌가. 참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새벽기도회에 참석했다. 아, 그곳에는 생소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꼭두새벽에 300명이 넘는 교인들이 예배당에 나와 눈물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나는 진정한 ‘선데이 크리스천’이었다. 주일이면 달랑 교회에 한번 다녀오는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였다. 성경도 읽지 않았다. 목사님이 성경구절을 제시하면 목차를 펼친 후, 페이지를 찾느라 허둥댔다.
“세상에는 참 죄인들이 많구나. 새벽부터 웬 눈물인가.”
새벽기도회 분위기가 좀 낯설었다. 그러나 한달 정도 지나자 성경 말씀이 꿀 송이처럼 달았다. 하나님은 기도와 성경말씀을 통해 매일 지혜와 용기를 부어주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처음 체험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그가 원하는 바를 기쁜 마음으로 해준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징표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한복음 14장 15절)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면서 매일 설교 요지를 노트에 기록했다. 현재 설교 노트가 43권이나 된다. 만약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지 못하면 노트에 불참 사유를 적었다. 몇 달 동안 출석 통계를 내보니 불참 사유는 딱 하나였다. 음주, 그것이 문제였다. 나는 친구·직원·손님들과의 술자리에서 거의 주도권을 뺏긴 적이 없을 정도로 음주를 즐겼다. 웬만큼 먹어서는 취하지도 않았다. 이성을 잃고 횡설수설하지도 않았다. 딱 술 체질이었다. 기도회에 불참하는 날은 노트에 ‘음주’라고 적었다. 횟수가 많아지면서 음주라는 표현이 부끄러워 ‘알코올’ 또는 ‘사케’라고 기록했다.
그런데 술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호텔 앞 화단에서 아침까지 잠을 자는 일이 있었다. 알코올이 마약처럼 내 영혼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런 습관이 고착화되면 좀처럼 고치기 어렵다.
“술버릇을 잡지 못하면 내 인생은 망가진다. 이제 술을 끊어야 한다.” 나는 금주를 위한 기도를 시작했다. 내가 술을 먹는 성경적 근거는 에베소서 5장 18절 말씀이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라.”
취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영어성경을 보니 ‘Do not get drunk’로 표기되어 있었다. 그 말은 술을 적게 먹으라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입에 대지도 말라는 뜻이었다. 드디어 술과의 전쟁이 시작됐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