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에서 풀려나 고향 토리노로 가는 8개월의 ‘기괴한 여정’
입력 2010-09-16 17:29
휴전/프리모 레비/돌베개
‘휴전’은 20세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가 프리모 레비(1919∼1987)의 자전적 소설이다. 레비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생존자이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세계적인 ‘증언 문학’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필명을 알린 첫 번째 작품 ‘이것이 인간인가’(1947)가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어 해방되기까지 10개월간의 체험을 다루고 있다면 그 속편 격인 ‘휴전’은 그가 고향 토리노로 돌아가기까지 8개월 동안의 고난에 찬 귀환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말, 반파시즘 운동에 참가한 혐의로 파시스트군에 체포된 그는 유대계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로 송치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가스실행을 피해 통상 ‘부나’라고 불리는 제3수용소에서 가혹한 강제노동을 하게 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1945년 1월 27일 소련군에 의해 해방되었다. 그 시점까지 살아남은 수인 가운데 5만8000명은 철군하는 독일군에 의해 연행되어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소련군에 의해 구출된 사람은 중병 때문에 수용소에 남겨졌던 약 7000명에 불과했다. 프리모 레비는 그 생존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장 토리노로 귀향할 수 없었다. “우리들의 귀국은 10월이 되어서야 겨우 실현되었다. 그것은 폴란드,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루마니아, 헝가리, 오스트리아를 통과하는 예측 불가능하고 부조리한 너무도 긴 여정이었다.”(11쪽)
‘이것이 인간인가’를 쓴 이후 무려 15년 만에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한 그는 페인트 공장에서 임원으로 일하며 퇴근 후 남는 시간을 이용해 집필을 계속했다고 한다. 아니, 레비가 친구들에게 자신의 귀향담을 들려주는 과정에서 이미 어느 정도 구상되었기에 글은 빠른 속도로 씌여질 수 있었다. 레비는 토리노로 돌아오기까지의 긴 여정을 17개의 에피소드로 구성해 마치 ‘오디세이아’에 빗대어 놓은 듯 펼치고 있다.
“나는 아직 해야 할 말을 한참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숙명적이고 불가피하며 공포스러운 일이 아니라, 슬프고도 유쾌한 모험, 광활하고 기묘한 국가들, 여행길의 무수한 친구들의 나쁜 짓, 제 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다채롭고 매력적인 혼돈 등이었다. 당시 유럽은 자유에 취해서 새로운 전쟁의 불안에 떨고 있었다.”(‘작가의 말’)
무질서하고 무정부적인 혼돈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레비는 전작과는 달리 좀 더 가볍고 명랑한 터치로 글을 써내려가고 있다. 이는 레비가 인간들의 행동에 억누를 수 없는 호기심을 품고 그들을 관찰한 덕분이다. 예컨대 레비가 아우슈비츠의 자식이라고 명명한 후르비넥의 존재를 증언하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아이는 세 살 가량 되어 보였고 아무도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아이는 말할 줄 몰랐고 이름도 없었다. 어린아이가 가끔씩 내뱉는 분명치 않은 소리들 가운데 하나를 후르비넥으로 해석하여 그에게 붙여준 것이었다. 아이는 허리 아래로 마비가 되었고 위축된 두 다리는 꼬챙이처럼 가늘었다. 그러나 수척한 삼각형의 얼굴 속에 푹 꺼진 아이의 두 눈은 끔찍하리만큼 생생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고 요구와 주장들로, 침묵의 무덤을 깨부수고 나오려는 의지로 가득했다.”(34쪽)
이 책의 중요성은 레비의 증언을 통해 비로소 아무도 아닌 ‘후르비넥’이 하나의 존재로 의미를 갖게 됐다는 점에 있다. 레비는 이 작품에서 정신착란에 걸린 클라이네 키푸라, 스무 살도 안 되어 디프테리아로 눈을 감은 앙드레와 앙투안 두 젊은 농부 등의 존재를 증언한다. 소련군 종군 간호사 갈리나에 대한 묘사도 훌륭하다. “갈리나에게 걱정이라고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침이면 머리 위에 아슬아슬하게 빨래통을 이고 종달새처럼 노래를 부르면서 세탁장으로 가는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중략) 그런데도 그녀의 내부에서 그녀의 동지이자 친구이자 약혼자들이 가진 것과 똑같은 덕목이, 똑같은 존엄성이, 노동을 하고 노동하는 이유를 아는 자의 존엄성이, 투쟁을 하고 자신이 옳다는 것을 아는 자의 존엄성이, 생을 앞에 둔 자의 존엄성이 꿈틀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101쪽)
프리모 레비에게 있어 ‘언어’는 단어라는 재료들을 엄선하고 정제하여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것으로 간주된다. 토리노 대학 화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이력에서도 알 수 있듯 그에게 언어는 실험 재료처럼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것이자 객관화되는 대상인 것이다. 레비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첫 작품과 비교해가며 각 장의 행 수, 각 페이지의 단어 수를 조사하고 그 단어들의 사용빈도까지 계산하는 치밀한 계획을 가지고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의 본업이기도한 화학자로서의 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던 것이다.
8개월에 걸친 여정 끝에 드디어 레비는 토리노 자택에 돌아온다. 하지만 그건 해피엔딩이 아니다. 자택에서 잠든 그는 공포로 가득 찬 꿈을 꾸었던 것이다. “이제 안의 꿈, 즉 꿈속의 꿈은, 평화의 꿈으로 끝난다. 차갑게 계속되는 바깥의 꿈속에서 나는 익히 알려진 어떤 목소리를 듣는다. 고압적이지도 않고 낮은 한 마디다. 아우슈비츠에서 들려오는 새벽의 명령소리, 두려워하면서 기다리는 외국어 한마디, ‘부스타바치’”(329쪽)
‘휴전’은 프란체스코 로시 감독에 의해 ‘아득한 고향’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휴전’이라는 단어는 우리 한 민족에게 더욱 특별한 현실감을 띠고 있음은 굳이 덧붙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