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사는 남한이 굶는 반쪽 포용하지 못하다니…”

입력 2010-09-16 17:29


오인동 美 LA인공관절硏 원장, ‘평양에 두고온 수술가방’ 펴내

“남한처럼 발전되고 여유 있는 나라가 굶고 있는 반쪽을 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지요.”

세계적인 인공관절수술 전문가인 오인동(71·사진) 미 LA 인공관절연구원 원장이 ‘평양에 두고온 수술가방’(창비)을 펴냈다. 1992년부터 올해 6월까지 통일운동가 겸 의사로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일들을 수록했다.

“유럽이나 다른 나라에서 강연을 하면 어느 나라 출신인지 물어본 뒤 꼭 ‘남한이냐 북한이냐’를 물어봐요. 그런 일들을 겪을수록 ‘아, 내가 한국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강해졌지요.”

가톨릭대 의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 의대 정형외과 조교수를 지낸 경력이나, 인공관절수술 부문의 권위자라는 그의 인생은 ‘통일’이라는 화두와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는 “재미한인의사회로부터 방북대표단이 돼 달라는 제안을 받고 호기심으로 시작한 방북길이었지만 북한 땅을 밟은 뒤 고국의 현실과 역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뒤늦게 한국 근현대사를 공부하면서 자신의 무지에 충격을 받았다고.

책에는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여러 편 실려 있다. 92년 첫 방북 때 오 원장은 북한 의사들 앞에서 고관절 수술에 대해 강연했다. 그러나 마음을 열지 않는 청중들의 딱딱한 반응에 “나는 여러분들의 의술을 훔치러 온 사람이 아니다. CIA 지시를 받고 온 사람도, 남한의 안기부 끄나풀로 온 사람도 아니다”라며 화를 냈다고. 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선거에 당선된 후 북한을 찾아갔을 때는 숙소에 난방도 들어오지 않는 열악함에 놀랐다.

그러나 첫 방북으로부터 17년이 흐른 지난해, 수술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찾아갔을 땐 눈을 비빌 정도로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고 한다. 말 한 마디 걸지 못하던 북한 의사들이 먼저 도움을 요청하고, 수술 과정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던 것. 그 의사들은 대부분 17년 전 자신의 강연을 들었던 사람들이었다. 오 원장은 “여러 차례 만나다보니 그동안 북한 의사들과 신뢰가 쌓여 변화가 생겼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해 6월 방북 일정을 마친 후 돌아갈 때에는 병원 관계자들이 “일 년에 두 차례만이라도 와 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현 정부 출범 후 악화된 남북 관계를 두고도 양측 모두에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역지사지의 태도를 가져야 하고, 북한은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쌀 등) 북한을 지원하는 데 소요되는 금액은 국방비에 비하면 적은 액수입니다. 개성공단이 열리고 금강산에 갈 수 있게 된 일은 영토가 넓어진 것과 다르지 않아요.” 북한에서도 고위관료 앞에서 쓴소리를 서슴지 않는다는 그가 남녘의 동포들에게 보내는 고언이다. 그는 평화통일의 방향에 대해 쓴 ‘통일의 날이 참다운 광복의 날이다’(솔무)도 함께 출간했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