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가 비싸다?… 한강공원 텃밭으로 바꿔 !

입력 2010-09-16 18:16


상추에 고기를 얹는 대신 고기에 상추를 싸먹어야 할까. 상추 4㎏ 한 상자가 8만원까지 올랐다. 치솟는 고추, 상추, 오이 값에 놀라 ‘채소를 직접 길러보자’고 결심하는 이들이 생겼다. 마침 이산화탄소 뿜으며 멀리 배달되는 대농장채소 대신 로컬푸드를 먹자는 운동이 퍼지는 참이다. 탄소를 줄여 지구온난화를 막자는 친환경 소비의 한 갈래다. 그러고 보면 도시에서 생산하고, 그 생산지에서 소비하는 도시농업은 지구를 지키고, 더불어 지갑도 지킬 묘안처럼 들린다.

일본 도시농업 전문가 요시다 타로(49) 나가노현 농업대학 교수가 경기도 도시농업네트워크 발족에 맞춰 지난 8일 5박6일 일정으로 한국에 왔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열독했다고 해서 새삼 주목받은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들녘)의 저자. 미국의 경제봉쇄 속에서 자급자족 전략으로 살아남은 쿠바 수도 아바나 생존기인데 ‘스스로 먹고 사는 도시’ 이야기가 요동치는 물가 속에서 여러모로 솔깃하다.

10일 수원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열린 발족식에서 만난 타로 교수는 도시농업의 미래를 확신했다. “도시농업이야말로 가장 적극적이고 행복한 환경운동입니다. 도시농장은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겁니다.”

가난한 곳에서 싹튼 미래

도시는 농산물을 생산하는 곳이 아니다. 소비 공간이다. 실상 근대도시는 소수의 농민이 다수의 도시인을 먹여 살리는 견고한 분업구조 위에서 발전해왔다. 따라서 근대적 사고에서 보자면, 도시농업은 형용모순이다. 이런 근대 패러다임은 의외로 가장 가난한 곳에서 깨져나갔다.

1996년 유엔개발계획(UNDP)은 ‘도시농업, 식량, 일자리, 지속가능한 도시’란 보고서를 통해 당시 개발도상국 도시에서 발견한 특이한 현상을 소개했다. 급격한 도시화로 거리에는 실업자와 쓰레기가 넘쳤다. 굶주린 빈민들은 자투리땅에 쓰레기로 만든 비료를 뿌리고 작물을 키웠다.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였다. 유엔은 뜻밖에 이들에게서 ‘지속가능한 도시’라는 미래를 봤다.

“빈민이나 실직자가 도시 안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립할 수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도시에는 유휴지가 있고 또 일자리가 필요한 이들이 있어요. 스스로 농사를 짓는 도시 빈민들을 보면서 땅을 활용하면 도시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2000년대 들어 지구의 미래가 자족도시에 달려 있다는 것은 명백해졌다. 5년 후 인구 1000만명이 넘는 메가폴리스는 26개가 된다. 한국은 이미 인구의 90% 이상이 도시에 산다. 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식량은 수백∼수천㎞를 여행할 것이다. 석유를 쓰고, 매연을 뿜고, 쓰레기를 만들어낼 것이다. 지구는 과연 언제까지 이런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까.

“물론 현재의 경제학 논리로 보면 도시농업은 성립할 수 없습니다. 대도시 비싼 땅에 싼 농작물을 경작해서 수익을 낼 수 없겠지요. 그보다는 빌딩과 아파트를 짓는 게 나을 겁니다. 하지만 지구에 미치는 장기적 효과를 따져보면 도시농업의 필요성에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시농장은 그 자체로 녹지다. 굳이 비용을 들여 공원을 꾸미지 않아도 동네주민이 그곳에서 쉬고 즐기고 사귄다. 주말농부라면 농사는 근사한 취미가 된다. 학생들의 체험교육장이나 심리 치료소, 노인 복지시설로도 활용할 수 있다.

타로 교수는 일본의 발달장애아동 얘기를 했다. 잡초만 골라 뽑아내는 특별한 집중력 덕에 동네의 스타농부가 됐다는 소년. 그는 농부가 된 뒤 태어나서 처음 엄마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했다.

“양말을 사달라고 했답니다. 그걸 신고 매일 농장에 나가야 한다면서. 그 얘길 하면서 어머니가 울먹였어요. 처음이라고. 때로 도시에 살지만 도시의 스피드에 적응하지 못해 불행해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농장은 살아갈 힘입니다.”

이웃에게 농장 일부를 체험 논으로 공개한 뒤 동네 놀이터가 된 도시농장 이야기도 들려줬다. 동네사람들은 농장에서 파티하고 콘서트도 열었다. 논 하나가 만든 결과였다.

타로 교수는 10년 넘게 도쿄 농림수산부 공무원으로 일했다. 그 시절 그는 도시 인근에서 주말텃밭을 가꿨다. 700㎡ 정도 크기의 밭에서는 버섯과 오이, 피망, 콩, 감자, 팥, 고구마, 무, 토마토 같은 부식거리가 자랐다. 수확물은 이웃, 친지, 동료와 나눠 먹었다.

“채소류를 산 적이 없었어요. 큰 밭도 아니었는데 늘 주변에 줄 게 넘쳤어요. 주는 게 있으니까 오는 것도 굉장히 많았죠(웃음). 누군가 케이크를 구워주고, 음식을 건네고. 늘 뭔가 오고 갔어요. 농부가 되는 즐거움이 그런 주고받기에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강의실까지 소 울음소리가 들리는 시골에 근무해서 도시농부가 되는 건 불가능하지만.”

농지가 도시를 바꾼다

도시농부의 최대 난관은 땅을 찾는 것이다. 서울이나 도쿄 같은 대도시에서 건물, 도로가 없는 빈 공간을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 때문에 아예 도시계획 단계에서 농장 터를 확보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도시의 구성요소는 주택, 학교, 도로, 상가, 관공서 등이다. 그게 지금까지 상식이었다. 주택을 설계할 때 방, 부엌, 화장실을 꼭 넣듯이 도시에는 반드시 그런 것들이 들어간다는 얘기다. 도시농업을 주장하는 이들은 여기에 농지를 추가하자고 말한다. 도시에 최소한의 먹을거리 생산기지를 확보하자는 것이다.

타로 교수 역시 같은 얘기를 했다. “정부가 도시개발 단계에서 농지를 일정 비율로 지정할 수 있을 겁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합의하고 요구한다면 더 좋겠지요. 이를테면 어떤 지역을 개발할 때 주민들이 ‘3% 정도는 농지로 남겨놓자’고 주장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방식으로 도시 안에 농지를 확보하면 도시가 많이 바뀔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논의는 제법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2012년 완공을 목표로 설계 중인 수원 호매실지구. 25개 공원을 건립할 예정인데 공원마다 하나씩 농장을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성사되면 도시농업을 배려한 첫 택지 개발로 기록된다.

좀 더 쉬운 방법도 시도되고 있다. 부산에서는 APEC나루공원 잔디밭을 걷어내고 텃밭을 조성했다. 경기도 용인 동백지구의 동일하이빌이나 서울 북한산 정릉골 테라스하우스촌처럼 주민용 텃밭을 마련했거나 준비중인 아파트 단지도 늘고 있다.

땅이 없다고 실망할 일만도 아니다. 건물 옥상에 채소를 키우면 단열과 냉방 효과까지 누릴 수 있어 요즘엔 옥상 텃밭이 핫 트렌드로 떠올랐다. 넓게 보면 도심 열섬현상을 막아줘 마을이 시원해지고 경관까지 예뻐진다. 가장 간단한 건 상자텃밭이다. 최근 서울 서대문구는 상자텃밭을 주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줬다. 씨앗까지 넣어 묶음으로 파는 상자텃밭 키트도 인기다.

경기도농업기술원에 지난 신설된 도시농업팀의 이원석 농업연구사는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을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에게는 경작본능 같은 게 있는 모양입니다. 빈터만 보이면 무엇이든 키우고 싶어 해요. 그간 도시에서는 그런 경작본능이 제약을 많이 받았습니다. 개발을 앞둔 토지라면 나중에 개발이 지연되거나 소유권 문제가 복잡해질 수 있으니까. 공원 내에 텃밭을 만드는 것도 법 때문에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 규제를 없애고 도시에서도 쉽게 농부가 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겁니다. 무엇보다 도시농업은 협력이 중요합니다. 도시계획과 건축, 조경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야 좋은 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수원=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