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노동당 대표자회 연기… 수해 따른 정족수 미달·후계 승계 차질 탓인 듯

입력 2010-09-15 21:34

북한 노동당의 제3차 대표자회가 연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연기 사유는 불명확하나 수해로 인한 내부 상황 악화 또는 후계자 구축을 위한 권력재편 작업 차질 등의 가능성이 제기된다. 북한은 당초 9월 상순(1∼15일) 당대표자회를 개최한다고 밝혔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15일 북한 당대표자회와 관련, “오늘은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수해가 이유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내부 사정이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대북인권단체인 ‘좋은벗들’은 수해에 따른 정족수 미달로 당대표자회가 연기됐다고 전했다. 이 단체는 북한 현지소식통을 인용, “14일 저녁까지 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아 당대표자회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며 “평양에 모여 개회를 기다리던 전국 각지의 대표자들이 15일 아침 이런 방침을 통보받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또 “수해로 도로가 끊기고 교통이 두절되는 바람에 상당수 지방 대표자들이 평양에 올라오지 못해 회의 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며 “다음달 10일 당 창건일 이전에 날짜가 잡힐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15일 오전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일 한반도를 관통한 7호 태풍 곤파스의 영향으로 수십 명이 사망했고, 주택 8000채가 파손됐으며 교통이 두절되고 철길이 끊겼다고 뒤늦게 보도했다.

이번 당대표자회를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 정은이 후계자로 공식 등장할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에 수해로 민심이 악화된 상황에서 무리하게 당대표자회를 강행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권력기구 재편 작업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관측도 설득력 있게 돌고 있다. 이번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은 정치국 상무위원이나 조직비서 등을 맡고 이를 뒷받침할 권력의 세대교체가 이뤄질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따라서 당대표자회 연기는 김 위원장이 이런 권력재편 작업을 둘러싼 조율작업을 마무리 짓지 못했음을 방증한다는 것이다. 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이 수해 때문에 개최를 연기했다고 흘리는 것은 대외적 명분으로 봐야 한다”며 “과거 당대표자회가 북한 권력지도의 향배를 가늠했던 것에 비춰볼 때 후계구도 등에 관한 조율이 잘 안 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말 개최된 북·중 정상회담 이후 주목받고 있는 북한의 개혁개방 정책과 관련해 내부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 건강 이상설도 내놓고 있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