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위안·엔貨 이례적 동시 초강세… ‘美 경기 둔화’ 한·중·일에 자금 급속히 몰려
입력 2010-09-15 21:48
엔화와 위안화, 한국 원화 등 동아시아 3국의 통화가치가 이례적인 동시 초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 경기의 둔화 움직임과 아시아 국가의 빠른 성장세가 맞물리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본 중앙은행은 엔화의 초강세가 이어지자 15일 6년 만에 처음으로 시장 개입을 단행했지만 엔화 강세 흐름이 바뀔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강하다. 수출 경쟁국(일본)과 최대 수출시장(중국)의 통화가 동반 강세를 보이면서 원화 강세로 국내 수출 기업들이 받을 타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엔·달러 환율은 15일 당국의 개입 속에 84.87엔(도쿄거래 기준)을 기록하면서 반등에 성공했다. 엔화는 전날 뉴욕 외환시장 거래에서 달러 당 83.04엔까지 내려가 1995년 5월 이래 최저치(엔화가치는 최고치)를 기록했다. 화폐가치 절상 폭도 3국 통화 중 가장 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엔화는 지난해 말 대비 15일 현재 10.1%나 절상돼 중국(0.9%)과 한국(0.7%) 절상률의 10배가 넘는다. 위안화는 이달 들어 초강세를 보였다. 달러·위안화 환율은 지난주부터 본격 추락(위안화 가치 상승)하기 시작, 14일(현지시간) 한때 6.7378위안까지 떨어졌다. 위안화가 거래되기 시작한 1994년 이래 최저치다. 원·달러 환율 역시 15일 1160.9원으로 마감하면서 올해 고점 대비 90원 이상 하락했다.
3국 통화 동시 강세 배경에는 미국 경제의 부진이 있다. 미국 경제는 고용시장 부진과 주택시장 침체 등으로 더블딥(경기 상승 후 재하강) 우려까지 제기됐다. 여기다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국가들이 금융위기에서 빠르게 회복되면서 자금이 급속도로 아시아 시장에 유입되고 있다.
3국 통화 강세 사이엔 미세한 차이점도 보인다. 우선 엔화 강세는 일본의 경제상태보다 미 경기 불안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경향 때문에 빚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은 이명종 국제동향팀장은 “글로벌 경제가 불안할 때 엔화에 베팅하면 돈을 번다는 금융위기 이후의 학습효과가 지금의 엔화 강세로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안화와 원화는 경제성장률과 수출 호조 등 국가의 경제기초가 튼튼하면서 자연스럽게 강세로 이어지고 있다. 위안화 절상은 미국의 입김도 영향을 미쳤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은 경제난 타개를 위해 중국에 위안화 절상 공세를 펴왔다. 여기에다 미 상·하원은 15∼16일(현지시간) 위안화 절상 관련 청문회를 연다. 위안화 절상이 이달 초 래리 서머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등 미 정부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한 이후 가팔라진 점은 시사하는 바 크다.
원화가 강세를 보이면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수출에 부정적이라는 게 통념이다. 원화가치가 100원 절상되면 정보기술(IT)과 자동차산업의 영업이익은 약 5조원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엔화 강세도 함께 발생하면서 일본과 수출 경합도가 높은 IT, 자동차의 경쟁력에는 별 영향이 없을 전망이다. 반면 장비와 부품 수입의존도가 높은 반도체, 통신기기 부문은 타격이 예상된다. 위안화가 강세를 보이면 한국 제품의 수출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는 반면 국내에 수입되는 중국산의 가격이 올라 물가에 부담을 주는 등 양면성이 있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