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몽골인 이주여성 ‘애달픈 죽음’… 폭력 남편 둔 동포 지켜주려다 흉기에 찔려 숨져

입력 2010-09-15 21:12

코리안 드림을 꿈꾸던 20대 몽골인 이주여성이 폭력 남편을 피해 도망친 동포를 지켜주려다 지난 14일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캉체체(25)씨가 정든 고향을 떠나 전남 나주의 한적한 시골마을로 시집 온 것은 지난해 3월. 수다를 떨 수 있는 또래 친구와 시름을 달래줄 일가친척 한 명 없었으나 그녀는 부러울 게 없었다.

남편 하모(40)씨는 한국말이 서툰 그녀가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밤낮으로 보살폈고, 시부모들은 친부모처럼 살갑게 대했다. 그녀는 지난 6월 아들을 순산했고, 집안에는 웃음꽃이 떠날 줄 몰랐다.

하지만 그녀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고향마을에서 친하게 지내던 후배 에렛테네체체(21)씨가 미등록 국제결혼 중개업소를 통해 한국으로 시집 오면서부터 그녀에게 불행의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고향 후배의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았기 때문이다. 후배의 남편 양모(34)씨는 당초 대학을 졸업하고 견실한 회사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해 결혼했지만 실제는 달랐다. 농사를 짓는 부모를 도우며 근근이 생활하는 빈곤한 형편이었다. 양씨는 술에 취해 말도 통하지 않는 아내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게 예사였다. 결국 후배는 지난 12일 간단한 옷가방을 챙겨 가출했고 캉체체씨의 집에서 머물렀다.

이틀 후 양씨는 캉체체씨의 집으로 찾아와 “무조건 아내를 돌려 달라”며 술에 취해 행패를 부렸다. 캉체체씨는 서툰 한국말로 “술 깬 뒤 데려가고 다시는 때리지 말라”고 항의하자 양씨는 부엌칼로 그녀를 수차례 찔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병원으로 급히 옮겼지만 과다출혈 등으로 끝내 깨어나지 못하고 4개월짜리 핏덩어리를 남긴 채 이국땅에서 저세상으로 떠났다.

그녀의 코리안 드림도 와르르 무너졌다. 남편 하씨는 양씨와 몸싸움 과정에서 목과 등에 상처를 입었다.

경찰은 휴대전화 위치추적과 연고지 파악 등을 통해 달아난 양씨의 신병 확보에 나섰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캉체체씨의 몽골인 친구는 “그녀는 평소에도 후배 걱정을 많이 하는 착한 성격이었다”며 “좋은 남편과 시부모님을 만나 잘살고 있었는데 정말 안타깝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