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태원준] 청년 ‘펭도’의 실험

입력 2010-09-15 17:35


“이름이 뭐지?”

“펭도예요.”

10년 전 고등학교 1학년이던 그와의 대화는 이렇게 시작했다. ‘조성도’라는 본명 대신 인터넷 아이디 ‘펭도(pengdo)’로 자신을 소개하는 통에 “뭐, 뭐라고?” 되물었던 기억이 난다. 서울 영등포에 있는 청소년 직업체험 공간 ‘하자센터’를 취재할 때였다. 톡톡 튀는 10대들이 음악 영상 디자인 등 전문가들과 어울리며 미래를 설계하던 이곳에서, 펭도는 웹에 ‘꽂혀’ 있었다.

“너 이담에 뭐 하고 싶니?”

“아직 구상 중인데…. 인터넷에서 허브가 되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포털이랑 비슷한데 꼭 그건 아니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어울릴 수 있는.”

정부가 IT강국을 외치며 광케이블 묻느라 열심히 땅 파던 시절, 컴맹이던 나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난 13일 스물일곱 청년이 된 펭도를 꼭 10년 만에 다시 만났다(얼마 전 인터넷에서 마주친 블로거의 아이디가 pengdo여서 트위터로 글을 보냈더니 바로 그 펭도였다). 성균관대 심리학과에 진학했는데 8년이나 다녔다고 한다. 휴학과 복학을 거듭하며 뛰어들었다는 두 차례 창업과 서너 차례 사회적 캠페인은 이런 거였다.

먼저 온라인 티셔츠 쇼핑몰 ‘두잉(Dooing)’. 인터넷에 쇼핑몰을 만들고 티셔츠를 팔았는데, 티셔츠 디자인을 소비자들이 하도록 했다. 2주마다 주제를 제시한다. ‘한글날’ ‘지리산’ ‘대학입시’ 등. 소비자들이 주제에 맞는 그림이나 문구를 사이트에 올리면 온라인 투표가 진행된다. 두잉은 네티즌들로부터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디자인으로 티셔츠를 제작해 판매하는 ‘소비자 참여형’ 쇼핑몰이다. 지금은 문을 닫았고 큰 돈은 못 벌었지만 호응이 좋아 1년 이상 회사가 유지됐다.

다음은 ‘아이 라이크 서울(I like Seoul)’ 프로젝트. 서울시가 올해 세계디자인수도로 지정되면서 거리 게시판에, 버스·지하철 광고판에, 가판대 외벽에 디자인서울 홍보물이 나붙었다. 환하게 웃는 시민들 사진 위에 ‘서울이 좋아요!’란 말풍선이 있는 포스터. 의문이 생겼다고 한다. 과연 서울 사람들은 이렇게 디자인되고 있는 서울을 좋아할까?

웹사이트(www.ilikeseoul.org)를 만들고 트위터와 미투데이로 시민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저 포스터에 등장한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나요?” 380여명이 답변을 보내왔다. ‘서울은 원래 좋아요’ ‘한강변에 나무 좀 그만 뽑으세요. 그늘이 없어요’ ‘서울은 365일 공사 중’ ‘난 이 환경미화 반댈세’ ‘피맛골을 돌려줘요’…. 이 글귀들을 스티커로 제작해 디자인서울 포스터에 덧붙이고 다녔다. 버스회사 주차장에 몰래 들어가 버스 광고판의 ‘서울이 좋아요!’ 글귀 위에 ‘난 이 환경미화 반댈세’ 스티커를 붙이는 식이었다.

지금은 젊은 사회적 기업가를 육성하는 사단법인 ‘씨즈(Seeds)’의 소셜미디어 매니저다. 지난 7월 사회적 기업 창업 아이디어를 공모했다. 응모자는 아이디어를 모든 네티즌에게 공개되는 유튜브 동영상으로 제작해 접수토록 했다. 30여건 응모작 중 11월에 3건을 뽑아 3년간 창업 지원을 해주는데, 조건이 있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해가는 과정이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같은 소셜미디어로 모두 공개돼야 한다. 이를 통해 형성되는 온라인 여론도 최종 심사에 반영된다. 구상 단계부터 잠재적 고객들과 끊임없이 대화해야 성공적인 사회적 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취지다.

여기까지 듣고 나니 10년 전 펭도가 했던 얘기를 비로소 이해할 것 같다. 창업도, 캠페인도, 사회적 기업도 그가 택한 방식은 ‘소통’이다. 티셔츠를 만들기 전에 소비자에게 디자인을 묻고, 내 목소리가 아닌 시민의 목소리로 디자인서울을 꼬집고, 사회적 기업이 태어나기 전부터 고객과의 소통을 주문했다. 요즘 기성세대가 그렇게 어려워하는 소통을 10년 전에 얘기했던 펭도의 실험, 또 어떤 모습으로 발전하는지 지켜보려 한다.

태원준 특집기획부 차장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