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심재수 (1) 젊음바친 회사 부도… 가정도 붕괴 위기

입력 2010-09-15 18:08


차라리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이대로 눈을 감으면 좋으련만…. 절망은 터널이 아니다. 완전한 블랙홀이다. 고난은 항상 한꺼번에 몰려온다. 설상가상(雪上加霜). 눈 위에 서리가 내린다.

젊음과 혼을 바친 회사가 부도났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한글 모아쓰기와 한자 변환처리 알고리즘(Algorithm)의 코드체계를 국내 최초로 개발해 상공부장관상과 장영실기술상을 수상한 톱 엔지니어가 졸지에 실업자 신세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1998년 1월은 잔인했다. 외환위기의 태풍이 직장을 부도로 몰아넣었다. 쌓아온 공적들이 일시에 무너져 내렸다. 상장기업이 졸지에 부실기업이 됐다. 전쟁터의 패장은 말이 없다. 부도난 기업의 임원은 할 말이 없다.

그때 ‘구조조정’이란 말이 처음 나왔다. 나를 믿고 동행해준 100여명의 직원들은 어찌한단 말인가. 매일 술로 고통을 달랬다. 어느 날, 만취상태로 귀가한 내게 아내가 슬며시 쪽지 한 장을 내밀었다.

‘경매처분 절차 통지서’. 기절할 정도의 충격이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집을 담보로 제공하고 대출을 받은 것에 문제가 발생했다. 부도난 회사는 부채를 상환할 능력이 없다. 회사에 이어 가정까지 무너질 위기였다.

“오, 하나님. 이건 너무 잔인합니다. 제가 비교적 양심적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온 것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침대에 엎드려 꺼이꺼이 울었다. 마치 인생이 온통 경매처분을 당한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안다. 내가 교회에 출석하는 신자라는 것을.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 사람이 주도하던 회사가 부도를 당했다? 주택마저 경매에 넘어갔다? 그리고 알거지가 됐다? 하나님, 이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잘되어야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고 예수를 믿을 텐데요. 하나님이 지금 손해를 보시는 겁니다.

사면초가였다.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었다. 내가 개발하고 생산·판매한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 대한 책임이 남아 있다. 만약 신속한 애프터서비스가 되지 않으면 은행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몇 개월째 급여와 교통비를 지급받지 못한 직원들의 불만은 최고조에 달했다. 나는 100여명의 직원들을 모아놓고 선언했다.

“자동화기기는 애프터서비스가 생명이다. 우리 제품을 구입한 고객들에게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 그러면 도움의 손길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즈음 한 지인이 회사를 찾아와 솔깃한 정보를 주었다. 고양시에 아주 용한 점쟁이가 산다는 것이다. 그는 한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훤히 꿰뚫는다고 한다. 신묘불측한 처방까지 내린다고 한다. 토요일 아침,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여보, 우리 바람이나 쐬러 갑시다.”

자유로를 달려 빨간 깃발이 꽂힌 무당집 앞에 도착했다.

“이 점쟁이가 아주 족집게라는군. 점을 한번 봤으면 싶어. 요즘 도무지 되는 일이 없잖아.”

아내는 침묵했다. 그런데 선뜻 그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우선 점심을 먹고 다시 옵시다.”

아내와 함께 점심을 먹은 후, 다시 무당집에 당도했다. 이번에도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만약 저곳에 들어가면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온 것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그때 아내가 내 손을 잡으며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여보, 무당집에 들어가는 것이 내키지 않지요? 제게 한 가지 묘안이 있어요. 내일부터 교회 새벽기도회에 나갑시다. 하나님께 집중적으로 한번 매달려 봅시다.”

아내의 권유에 마음이 흔들렸다. 점을 보느냐, 새벽기도를 드리느냐. 아주 중요한 선택이 내 앞에 놓여 있었다.

약력=1956년 경남 함안 출생. 고려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FKM 대표이사 사장. 장영실기술상, 상공부장관상 수상. 외국기업협회 선정 ‘세계를 감동시킨 CEO’. 영락교회 안수집사.

정리=유영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