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산사태 악몽 딛고 일어서는 필리핀 세인트버나드
입력 2010-09-15 21:39
마닐라에서 670㎞ 떨어진 이곳 레이테섬 남부 세인트버나드는 지질학적으로는 대규모 단층지역으로 산사태가 빈발하고, 태풍의 주요 통과지점이기도 하다. 2006년 2월 17일 오전 10시경, 엄청난 굉음과 함께 산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진흙더미 속으로 순식간에 마을 다섯 개가 파묻혀버렸다. 거대한 바위 덩어리가 마치 공상영화 장면처럼 날아다녔다. 지진과 함께 발생한 산사태로 무려 1200명에 가까운 생명이 흙더미 속에 매장됐다. 단일 산사태로는 가장 큰 규모였다고 한다.
이 비극적인 소식이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한국에서도 국민일보와 기아대책,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등이 긴급 구호에 나섰다. 3일 만에 도착한 구호단은 곧장 팔을 걷어붙이고 사역에 나섰다.
100일째 되는 날. 한국 교회에서 보내준 성금으로 4500평 크기의 안정지대에 새로운 마을이 세워졌다. 이곳 새 땅에는 30채의 새 집과 마을회관 성격을 띤 비전센터가 세워져 지금은 기아대책 기아봉사단 서상록(54) 선교사가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서 선교사는 산사태를 당한 956가구 3536명의 주민들에게 생존 자체를 넘어 공동체 전체가 변화되고 한걸음 더 나아가 다른 공동체까지 도울 수 있는 비전을 심어주고 있다.
“이 마을엔 나의 땀방울이 모두 젖어 있는 거 같아요.”
그가 주민들과 가꾼 텃밭을 보며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그 땀방울이라는 게 육체적인 노동 말고도 이곳 주민들의 영혼을 위하여 흘린 눈물방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9월초 주일을 맞이하여 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세상 어디에 이보다 더 뜨겁고 감동적인 예배가 있을 수 있을까.
예배당에 모인 이들의 면면은 다양했다. 남녀노소를 합해 100여명 가까운 이들이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쁨이 넘쳤다. 예배드리는 사람들 속에 하얀 교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학생이 여럿 보였다. 서 선교사의 노력으로 마마누아족을 비롯해 교육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던 청소년 28명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이곳을 떠났을 때를 대비하여 이들에게 빵을 거저 나눠주지 않는다고 했다. 빈곤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사회적 모순을 구조적으로 바꿔주고 자립할 수 있도록 모든 사역을 이들과 함께 해나간다고 했다.
예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 하나님을 깊게 영접한 이 지역 이장인 살디씨가 예배 인도를 맡고 있다. 밀림 깊숙한 곳을 방랑하고 살아 천민으로 취급받던 마마누아족의 아이들과 이 지역의 아이들이 함께 어우러져 온 몸으로, 온 소리를 다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올리고 있었다. 예배 끝자락에 서 선교사는 촬영을 하고 있는 나에게 이들 아이들을 위하여 한마디 해달라며 마이크를 건넸다. 마이크를 잡은 나는 큰 소리로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러분! 꿈을 꾸세요. 그리고 그 꿈을 꼭 이루도록 노력하세요. 열심히 공부하여 선한 일을 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세요. 나는 이곳 여러분들 중에 아픈 사람을 도와주는 간호사와 의사가 나오고, 좋은 집을 지어 이웃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건축가가 나오고, 아이들을 잘 보살피는 선생님과 이 나라를 잘 다스려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이 나올 거라 확신하는데 여러분은 어떠세요? 그렇죠?”
아이들 모두가 반짝거리는 눈망울을 나에게 돌리며 “네∼” 하고 큰소리로 대답했다. 하얀 이를 시원하게 드러내며.
예배를 마치고 카메라를 든 나를 수십 명의 아이들이 따라붙었다. 그 아이들을 덥석 안고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었던 나는 촬영 때문에 그들과 물리적, 심리적 거리감을 유지해야 한다는 게 고통이었다. 가만히 보니 그들은 모두 점심을 먹지 않았다. 예배를 마친 그들에게 우리식 잔치국수라도 말아 주면 행복할 거 같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았다. 그 많은 사람들에게 달리 해 줄 만한 먹거리가 없는 듯싶었다. 10년 전에 어린 세 자녀를 두고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아내가 그리운 서 선교사는 “아내만 있었어도 아이들에게 음식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었을 것”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예배 후 서 선교사를 기다리는 또 다른 사역이 있었다. 달리 병원이나 약국이 없는 터라 몸이 불편한 이들을 꼼꼼히 살핀 후 약을 나눠주고 사고 당한 어린아이의 다리 상처를 동여매고 약을 발라주었다. 그야말로 그는 작은 병원의 마음씨 착한 원장 아저씨 같았다. 기아대책 NGO봉사단으로 와 서 선교사를 돕고 있는 총신대 학생 강일진(23·신학과) 형제가 간호사 역할을 하고 있었다.
병원사역을 마친 후 장엄하다 싶을 정도로 하늘로 쭉쭉 뻗은 야자수가 둘러쳐진 길을 걸어 나와 마을시장으로 향했다. 전날 선교사님과 일진 형제를 위해 담근 김치가 모자란다 싶어 배추라는 배추는 모두 사서 김치를 더 담그고 겉절이를 만들고 김치찌개를 만들어 김치 구경을 못하는 두 사람에게 그야말로 김치파티를 열어주었다. 맛있게 먹어주는 두 사람의 모습은 나에게 감사함을 가르쳐 주었다.
꿀맛 같은 저녁 식사 후 우리는 또 다른 마을 긴사우곤으로 향했다. 그곳에도 산사태로 삶의 터전을 잃고 타 구호단체와 정부로부터 집을 제공받아 살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긴사우곤에는 부모와 가족을 잃고 이모나 할머니 품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이 많았다. 그 중 반스티월드 형제는 아직도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 보였다. 산사태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마저 재혼하여 마닐라로 떠나버려 병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보호 아래 자라고 있는 초등학교 4학년 반스티월드와 동생 알빈의 생활 환경은 최악이었다. 파리가 까맣게 달라붙은 시커먼 냄비 속에 생선 한 마리가 멀건 국물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게 먹을 것의 전부였다.
서 선교사는 나를 향해 걱정 어린 목소리로 “형 반스티월드는 기아대책의 후원으로 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동생 알빈도 내년엔 입학을 해야 하거든요. 아직 뚜렷한 대책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반스티월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꼭 안아주었다. “월드라는 이름이 참 맘에 드는데, 이름값을 하는 사람이 되길 기도할게.” “네.” 작은 소리로 대답하는 월드의 큰 눈에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산사태 이후 2년간은 필리핀 중앙 및 지방 정부의 지원이 있었으나 현재는 모든 지원이 끊긴 상태다. 아직도 이들에겐 생필품을 비롯한 의약품 및 학비 등 다방면에 있어서 지원이 필요한 상태다.
세인트버나드에서 2박 3일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강일진 형제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선생님 혹시 이런 거 아세요?”
“뭔데요?”
“먼 길을 여행하는 데 가장 빨리 행복하게 가는 방법요?”
“글쎄요!”
“좋아하는 사람과 걸어가는 거래요. 지금 제가 그래요.”
“나도 그래요. 올해가 다 가기 전 국수를 들고 다시 와서 김치를 아주 많이 담가 줄게요. 이곳 아이들과 나눠 먹을 수 있게요. 맵지 않게요.”
■ 후원안내
ARS: 060-700-0770 계좌: 국민은행 059-01-0536-352(예금주: 기아대책)
세인트버나드(필리핀)=글·사진 조인숙(사진작가·갤러리 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