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EU FTA 공식서명 놓고 막판 진통
입력 2010-09-14 18:40
유럽연합(EU)이 우리나라와의 자유무역협정(FTA) 공식서명 문제를 놓고 막판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협상타결 이후 11개월 동안 가서명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표면상으로는 자국 자동차산업 피해를 우려한 이탈리아의 반발 때문이지만 EU 내부적인 정치적 셈법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EU FTA 발효 지연되나=EU 이사회는 지난 10일(현지시간) 특별외교이사회에 이어 13일 정례 일반관계이사회에서도 우리나라와의 FTA 승인 문제를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27개 회원국의 동의를 전제로 움직이는 EU이사회가 이탈리아와의 타협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강유덕 부연구위원은 14일 “한·EU FTA로 중형차 수출 경쟁력을 갖고 있는 독일은 이득을 보는 반면 페라리 등 고급차 외에 소형차에 경쟁력이 있는 이탈리아가 피해를 예상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탈리아 내수용 자동차산업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피아트가 국가의 입장을 움직이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EU는 16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참석하는 정상회의에서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회원국 정상 간 만남에서도 결론이 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자국내 지지기반이 크게 약해진 상황에서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정치적 무리수를 두지 않으려 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정식서명과 의회 비준절차만을 남겨둔 한·EU FTA 발효 문제가 한·미 FTA처럼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EU 속사정과 전망=이탈리아의 막판 돌출행위를 보는 외교통상부의 속내도 복잡하다. EU 의사결정구조의 특성상 27개 회원국의 동의가 이뤄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미 가서명 절차에서 세부내용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사항이기 때문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협상 타결 당시 유럽공동체 조약에 근거한 133조 위원회가 이미 각국의 이견을 조율하는 과정을 거치도록 돼 있다”며 “이탈리아가 반대하더라도 FTA 근간을 훼손하는 개정작업은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자국 자동차산업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는 이탈리아는 지난해 가서명 당시부터 거부권 행사를 경고해 왔지만 최근 기존 강경 입장과는 약간 다른 발언을 내놓았다. 주(駐) EU 이탈리아 대표부 페르디난도 넬리 페로치 대사가 지난 9일 협정 발효 연기를 조건으로 승인에 찬성하는 안을 이사회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외교부 관계자는 “이탈리아의 제안은 한·EU FTA를 하지 말자는 의견과 같다”며 이탈리아의 태도를 강력히 비난했다.
고려대 박노형 교수도 “협상 당시 유럽시장 점유율 감소를 우려한 일본 자동차업계의 로비설도 나오는 등 유럽자동차업계의 이해관계가 이미 타결된 FTA를 뒤흔드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정동권 기자 danch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