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변재운] 낙지의 반격?
입력 2010-09-14 17:53
북한에서는 낙지를 오징어라 부르고 반대로 오징어를 낙지라고 부른다. 분명한 사실인데도 그 말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라는 반응이다. 분단으로 언어의 이질화가 심화됐다지만 낙지와 오징어를 거꾸로 부르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산낙지만큼 술안주거리로 제격이 있을까. 접시 위에서 꿈틀거리는 낙지는 금방 입안에 군침을 돌게 한다. 낙지 마니아들은 작은 세발낙지를 나무젓가락에 말아 입안에 넣고는 발버둥치며 들러붙는 빨판을 혓바닥으로 이리저리 떼며 씹어 먹는데, 외국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질겁한다. 영화 ‘올드보이’가 미국에서 개봉됐을 때 주인공 오대수 역의 배우 최민식이 산낙지를 먹는 장면을 보고 ‘동물학대’라는 비난이 쏟아졌다고 한다. 지금도 미국의 한인 횟집 앞에서는 가끔 산낙지 판매 금지를 요구하는 동물보호단체의 시위가 벌어지는 모양이다.
전남 무안, 목포 등지에서는 산낙지를 꺼리는 사람들을 위해 소쿠리에 비벼 잠시 기절시킨 뒤 먹는 ‘기절낙지’가 유명하고, 나무젓가락에 돌돌 말아 양념을 해서 구워먹는 ‘낙지호롱’도 인기 메뉴다. 낙지 하면 또 국물이 시원한 연포탕도 빼놓을 수 없고, 해물탕은 역시 꿈틀거리는 산낙지가 들어가야 제 맛이다.
우리나라 사람들같이 낙지를 좋아하고 많이 먹는 민족도 드물 듯 싶다. 기력이 쇠한 소에게 낙지 몇 마리를 먹이면 벌떡 일어난다는 말도 있듯 최고의 스태미너식으로 통하고, 어민들은 낙지를 ‘뻘 속의 산삼’이라 부르기도 한다. 특히 머리 부분은 먹물 맛이 일품인데다 수년전 먹물이 항암, 항균 작용을 한다는 연구보고가 발표되면서 서로 먹으려고 다투는 귀한 음식이 됐다.
낙지, 문어 머리의 먹물과 내장에서 기준치의 최고 15배를 넘는 카드뮴이 검출됐다는 소식은 낙지 마니아들에게 그야말로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다. 식약청은 일주일에 한두 번 먹는 것은 괜찮다고 했지만 이런 발표가 있을 때마다 예민하게 반응해온 전례에 비추어 낙지 소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낙지가 우리나라에만 사는 것은 아닐진대, 아무리 뻘 속 깊이 숨어도 귀신같이 알아내는 어민들의 삽질을 피할 도리가 없으니 대한민국의 낙지는 천수를 누리지 못하는 불쌍한 놈들이다. 머리 속 중금속 덕분에 자신들을 향한 삽질이 줄어든다면 낙지 입장에서는 더 많은 카드뮴으로 머리를 꽉꽉 채운들 무슨 상관이 있으랴.
변재운 논설위원 jwb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