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주리] 웅이 이야기

입력 2010-09-14 17:53


몇 해 전, 집 근처 빈 땅에서 쇠 철망 속에 갇혀 있는 어린 개 두 마리를 보았다. 그놈들은 추운 한겨울 꽝꽝 언 밥을 갉아먹고 있었다. 누군가 일주일에 한 번쯤 와서 남은 밥찌꺼기 한 통씩을 부어주고 갔다. 알고 보니 그렇게 키워서 사철탕 집에 팔려는 거였다. 팔려가는 순간에 나는 그 두 마리를 적지 않은 돈을 주고 샀다. 불쌍해서 데려간다는데도 개 주인은 요즘 토종개가 드물어서 값이 비싸다며 터무니없는 가격을 불렀다.

어쨌든 그날 이후 우리 집 식구가 된 백구 두 마리는 순이와 웅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상한 건 그놈들이 절대 짖지 않는다는 거였다. 무서운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 낯선 남자만 나타나면 어디론가 재빨리 숨고 없었다. 그놈들은 오직 밥을 주고 보호해주는 나와 어머니만 따랐다. 식용 개는 따로 있지 않다. 정 붙이면 애견이고, 정 안주고 밥만 먹여 키우면 식용이다. 이 땅의 흔하고 흔한 잡종견인 황구와 백구들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키워 본 사람은 안다. 사람들이 하도 많이 잡아먹어서 어느 날 씨가 마를 날이 올 것만 같다.

문제는 한 달 두 달 지나면서 순이의 발정시기가 다가온다는 거였다. 벌써 동네의 수캐들이 냄새를 맡고 몰려들고 있었다. 새끼를 낳으면 기르지도 못하고, 그놈들 다 사철탕 집 신세가 될 게 뻔했다. 개의 출산을 막기 위해 우리 가족은 순이를 철조망에 가두고, 웅이의 거세를 결정했다.

얼마 안 가 우리의 결정이 얼마나 아둔한 인간의 생각이었는지 드러났다. 웅이와 순이의 교미를 두려워하던 우리에게 가장 원치 않던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 웅이는 병원에 가서 거세를 당하고, 순이는 동네를 돌아다니는 낯선 수캐의 새끼를 뱄다. 순이의 출산을 어쩔 수 없이 기다리던 어느 날 갑자기 순이가 죽었다. 밥을 하도 안 먹어서 병원에 데려가니 새끼가 배 안에서 죽은 지 오래였다. 너무 고통스러워하다가 죽어가는 순이를 지켜보며 엄마와 나는 많이 울었다.

우리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중성수술을 시키면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는 말만 듣고 웅이를 수술시켰는데, 사실은 아무 소용도 없었다. 늘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며 살아가는 어리석고 위대한 종족 인간, 하지만 자연은 늘 그보다 힘이 세다. 순이가 죽은 뒤 웅이는 너무 쓸쓸해했다. 낯선 사람만 보면 숨어버리는 성향이 더 심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날렵한 암캐 한 마리가 우리 집에 들어왔다. 그 모습에 반한 웅이는 그녀를 따라 집을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도 교통사고가 났거나 이 동네에 흔하디흔한 개고기 장수에게 끌려갔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두 해를 못 넘기고 세상을 떠난 순이와 웅이를 떠올리며, 팔자는 못 속인다는 말이 떠올랐다.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개 팔자도 다 따로 있는 모양이다. 모든 개들은 죽으면 천국으로 간다는 말이 떠오른다. 그럴 거다. 어떤 죄도 저지른 적 없는 동물들은 다 천사가 아닌가? 어느새 또 가을인데, 자꾸만 떠오르는 웅이의 겁에 질린 선한 눈동자가 나를 슬프게 한다.

황주리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