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홍상수 옴니버스 ‘옥희의 영화’… 영화감독과 대학교수 그리고 여자 옥희

입력 2010-09-14 17:58


문성근은 “전날 술 마시고 늦게 일어났는데 촬영 있다고 해서 갔더니 엄청난 대사를 주더라”라고 말했다. 정유미는 “감독님이 겨울에 간단히 스케치를 해보자고 해서 나갔다”고 했고, 이선균은 “일주일에 두 번 찍자는 말에 응했다”고 했다. 감독은 “제작비가 5000만원 정도 들었다”고 말했다. 홍상수 감독의 신작 ‘옥희의 영화’ 이야기다.

‘옥희의 영화’는 4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다. 그러나 일반적인 옴니버스 영화와는 달리 각각의 이야기가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 불분명하고, 이번 편의 등장인물이 아까 나왔던 그 인물인지 아닌지 아리송하다. 영화 속 줄거리의 전체적인 인과 관계에 대해 명쾌한 설명이 내려지지 않는 가운데 등장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는 채워질 듯 말 듯 틈틈이 여백을 남긴다. 홍 감독의 영화가 늘 그렇듯, ‘옥희의 영화’는 또 한 번의 실험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 ‘주문을 외울 날’에서 진구(이선균)는 사회성 없는 삼십대의 독립영화 감독, 송 교수(문성근)는 대학의 영화과 학과장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 ‘키스왕’에서 진구는 옥희(정유미)를 짝사랑하고, 옥희와 송 교수는 뭔가 비밀스런 관계가 있는 듯하다. 세 번째 ‘폭설 후’에선 송 교수가 시간강사로 나온다. 마지막 에피소드 ‘옥희의 영화’는 영화과 여학생 옥희가 시차를 두고 처음엔 송 교수, 1년 후엔 진구와 아차산에 오르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제의식 없는 듯 무심한 가운데 변주되는 인물들,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살아나는 새로운 맛 등 홍상수 표 영화의 매력이 ‘옥희의 영화’에 그대로 묻어 있다. 홍 감독의 말대로 ‘겨울을 스케치하듯’ 그려진 가운데 세 주연배우의 열연이 볼 만하다.

총 제작비 5000만원이라는 사실이 말해주듯, 감독을 포함해 단 5명의 스태프들만 영화에 참여했고 영화 포스터는 촬영장을 지나던 등산객이 우연히 찍어준 사진에 그림만 입혔다고 한다. 최근 폐막된 제67회 베니스영화제 오리종티 부문(새로운 흐름의 영화들을 소개하는 섹션) 폐막작이기도 하다. 18세가. 16일 개봉.

양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