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 ‘그림자 배심원단’ 떴다

입력 2010-09-13 21:34

13일 오전 11시쯤 서울 자양동 서울동부지법 제1호 법정. 아내를 살해한 혐의(살인)로 구속기소된 화물운송업체 대표 송모(57)씨에 대한 공판이 열렸다. 송씨는 지난 3월 19일 오전 5시50분쯤 서울 방이동 자택에서 잠자던 아내 최모(51)씨를 흉기로 100차례 이상 찔러 숨지게 한 혐의다.

올해 12번째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이 재판은 전국 법원 가운데 최초로 구성된 ‘그림자 배심원단’이 참관했다. 그림자 배심원단은 인원이 제한된 정식 배심원단과 동일한 재판 참여 과정을 더 많은 국민이 경험토록 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또 유무죄 여부와 양형을 비공개로 논의하는 정식 배심원단과 달리 재판부가 배심원단의 평의 과정을 녹화·기록함으로써 국민참여재판을 내실화하는 자료로 쓸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재판의 쟁점은 범행 당시 송씨의 심신장애 여부였다. 송씨는 아내가 처남과 짜고 재산을 가로채려 한다고 착각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10여년간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린 송씨는 최근 정신과 통원치료를 받았다. 검찰은 배심원단에게 “정신질환과 심신장애를 혼동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반면 변호인은 송씨가 피해망상과 극도의 심신미약 상태에서 벌인 일이라고 강조했다.

법정 공방이 벌어지는 동안 그림자 배심원인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생, 한양대 법학과 재학생 17명은 양측 변론과 재판부 설명을 꼼꼼히 적었다. 일부는 검사가 범행 수법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범행 도구 공개, 증인 신문이 진행되면서 학생들은 재판에 몰입했다.

이들은 재판이 끝난 뒤 정식 배심원단과 별개로 토론을 벌여 피고인을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9년을 선고했다. 논의 과정은 모두 녹화됐다. 평결 내용은 재판에 반영되지 않았지만, 재판부는 송씨에게 배심원단 결정과 같은 형량인 징역 9년을 선고했다. 서울동부지법 관계자는 “정식 배심원단의 평결은 비공개로 진행돼 국민참여재판의 내실을 점검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았다”며 “그림자 배심원 제도는 이런 한계를 보완하는 개선책으로 도입됐다”고 설명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