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인도주의 차원… “對北 퍼주기는 없다” 메시지

입력 2010-09-13 18:23


대한적십자사가 13일 발표한 대북 수해 지원은 품목이나 규모를 고려할 때 당초 정부가 강조했던 인도주의적 지원 원칙에 충실한 것이라는 평가다.

한적이 밝힌 지원 품목은 쌀 5000t과 시멘트 1만t, 컵라면 300만개 등 각종 긴급 구호품이다. 전체 금액으로는 한적이 지난달 말 북측에 제안했던 100억원 수준이며, 수송료 등을 감안하면 최대 120억원 규모다.

특히 쌀이 북한에 지원되는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 처음이다. 유종하 한적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수해 지원이나 이산가족상봉은 순수하게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이뤄지길 원한다”며 “적십자 간 인도주의적 사업들은 정치적 상황과 별도로 계속돼야 한다”고 밝혔다.

유 총재는 “신의주 지역 수재민이 약 8만∼9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본다”며 “쌀 5000t은 10만명을 기준으로 하면 100일간, 20만명 기준으로는 50일치 식량”이라고 말했다. 한적은 신의주와 함께 개성에도 구호물품을 보내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개성에 대한 수해 자료가 불충분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쌀 5000t은 그동안 이뤄졌던 한적과 정부 차원의 대북 쌀 지원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규모다. 말 그대로 신의주에 대한 긴급 구호에 그친다.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이 있었던 2006년에도 한적을 통해 수해 지원용으로 북측에 쌀 10만t을 제공했고, 2000년부터 2007년까지 거의 매년 정부 차원에서 쌀 30만t을 북측에 지원했다.

때문에 정부가 민간단체와 정치권의 줄기찬 대규모 대북 지원 요청을 뿌리치고, 쌀 5000t 지원 카드를 내놓은 것은 인도주의적 명분은 살리되, ‘대북 퍼주기’는 없다는 대북 원칙을 지키겠다는 의미가 담겼다는 해석이다.

또 북측에 대해서는 천안함 사태 사과 등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진정성과 근본적 태도 변화를 보여야만 대규모 쌀 지원이 가능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측이 요구했던 굴착기 등 중장비가 지원 대상에서 빠진 것은 중장비가 인도주의적 성격을 넘는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유 총재는 “쌀은 수재민의 긴급 식량이고 시멘트도 (복구 작업에) 필요하다”며 “하지만 굴착기 등 장비는 규모도 크거니와 다른 문제점도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중장비의 경우 추후 전략물자로 전용될 수 있고 수해 복구 이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큰 점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