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두대 만든 사람이 먼저 처형될라… 與 “공정, 기준 만들어야”
입력 2010-09-13 18:32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국정 운영 기조로 제시한 ‘공정한 사회’의 구체적 기준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여권에서 나오고 있다. 공정한 사회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이용될 경우 자칫 여권에 부메랑이 되어 날아올 수 있다는 우려감이 깔려 있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13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너무 큰 과제라서 한마디로 결론을 내기는 어렵지만 공정한 사회 만들기가 사정 바람으로 변해 서민 경제에 부담이 가는 방향은 옳지 않다”며 “지금보다 더 수준 높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회통합적 차원에서 우리 사회 각 분야가 공정한 사회의 룰을 차분하게 시간적 여유를 갖고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원내대표는 “분노의 감정을 갖고 ‘걸리면 간다’는 식의 여론에 끌려가고, 이것이 사정 바람으로 몰려갔다간 또 다른 속죄양을 만드는 사회 갈등 구조만 만들 수 있다”며 이같이 제안했다.
안상수 대표도 “공정한 사회는 매우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다양하게 이용될 수 있다”며 “그래서 그 기준은 법치주의에서 찾아야지 다른 것들이 기준이 돼 혼란을 가져오면 안 된다”고 거들었다. 앞서 안 대표는 당 부설 여의도연구소와 정책위에 ‘공정한 사회’를 반영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 마련을 주문한 바 있다.
김문수 경기지사도 라디오에 나와 “공정한 사회라는 이름 아래 자의적인 해석이나 여러 가지 잣대를 들이댈 것이 아니라 이것을 법제화하고 제도화해 사회에 정착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국회나 언론에서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당 내부에서는 공정한 사회가 자칫 집권 후반기 여권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걱정이 적지 않다. 원내대표단의 한 의원은 “우리나라 국민 4500만명 모두 각자가 생각하는 정의의 기준이 다르다”며 “기요틴(단두대)을 만든 사람이 먼저 기요틴에서 처형됐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자칫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공정한 사회 화두를 제시한 임태희 대통령실장의 국회의원직 유지를 놓고 ‘공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등 여권에 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분위기도 강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두언 최고위원을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 11명은 14일 ‘공정사회, 어떻게 실천해야 하나’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기로 했다. 정 최고위원은 “공정한 사회의 각론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수차례 논의를 통해 구체적인 기준을 만들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