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광형] TV ‘예능 공화국’

입력 2010-09-13 17:47


“나 몰라라 쌩까면 어떡하라는 거예요.”(KBS 2 ‘1박2일’)

“이것들이 지들끼리 떠들고 자빠졌어.”(SBS ‘패밀리가 떴다 2’)

“남 찍는데 와 가지고 꼽사리를 끼어.”(MBC ‘무한도전’)

국립국어원이 지난 6월 한 달 동안 지상파 방송 3사의 대표적인 예능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언어표현을 분석한 결과 비속어로 규정한 대사들이다. 상대방의 외모를 빗댄 인격모독 표현도 수두룩하다.

“(MC몽을 보며) 생긴 거는 풀 뜯어먹게 생겨 가지고.”(1박2일)

“(자기에게 덤비려는 윤아에게 김희철이 하는 말) 할멈, 이리 와∼”(패밀리가 떴다 2)

“(유재석을 보고) 제수씨 저 얼굴 보고 어떻게 결혼을 했냐?”(무한도전)

국립국어원은 조사 결과 총 844건(대사 436건, 자막 408건)의 저품격 방송언어 표현을 골라냈다. 비속어가 39%로 가장 많았고 인격모독 표현 26%, 폭력적 표현(1.8%), 욕설(2.3%), 기타(27.4%) 등이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TV만 켜면 예능 프로그램이 쉬지 않고 방송되는 현실이니 저속 표현의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국립국어원뿐만 아니라 시청자 모니터링 기관에서도 수시로 지적하는 사항이지만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 언어표현이야 아무렇게 하든 시청률만 높으면 그만이라는 방송사 제작진의 시청률 제일주의 인식 때문일까.

TV에서는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연예인들이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끊임없이 방송된다. 아침에는 ‘연예정보’라는 이름으로 각종 프로그램에 끼어들고 낮 동안에는 이미 방송된 예능 프로그램이 시도 때도 없이 재방송된다. 한밤중에는 거의 모든 방송사가 예능에 목숨을 건 듯하다.

연예인은 겹치기 출연이 예사이고 내용도 시시콜콜한 사생활 얘기와 누구랑 사귄다는 소문에 대한 해명이 주를 이룬다. 대사나 자막도 별로 걸러지지 않는다. 막말이나 저속한 표현이 시청자 항의로 문제가 생기면 그때서야 사과를 하고 재발 방지에 힘쓰겠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그런데도 시청자들은 재미있다고 턱을 괸다. 비슷비슷한 포맷과 똑같은 출연진으로 구성된 방송사의 예능 반복학습 함정에 시청자들이 빠져든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거짓말을 하거나 음주운전 병역비리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 연예인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TV에 버젓이 나온다.

특정 연예인이 파문을 일으키면 방송사에서 보이는 반응은 천편일률적이다. 그가 출연 중인 해당 방송사에서는 일단 조사를 하겠다고 나서고 상황이 심각할 경우 방송 출연 정지 등 퇴출을 결정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져 갈 때쯤 다시 그를 기용한다.

그동안 이런 사례는 수없이 있었다. 왜 그럴까. 예능을 진행할 인력양성 시스템이 전무한 현실에서 가수나 개그맨 등에 의지하다보니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기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금만 인기가 오르면 콧대가 높아지는 연예인에게 휘둘리는 방송사의 ‘굴복’도 문제다.

특정 연예인에 대한 스캔들 기사가 나면 방송사는 진실 여부는 차치하고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비슷한 내용을 수십번이고 내보낸다. 연예정보 방송 과당경쟁에 따른 전파 낭비가 월드컵 중복 중계 못지않다.

카지노 도박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신정환이나 병역기피 의혹에 휩싸인 MC몽은 방송사의 이 같은 관행이 집약된 사건의 당사자들이라 할 수 있다. 마녀사냥 식 비난은 자제해야 하겠지만 연예인은 공인이기 때문에 방송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책임이 있고 방송사도 시청자에게 지켜야 할 기본적인 규율이 있는데도 그러지 못한 결과다.

이번 파문을 계기로 예능 방송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무엇인지 점검하고 개선하는 기회를 마련했으면 한다. 올 추석 연휴를 앞두고 방송사마다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을 것이다. 온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 앉아 다함께 웃으며 시청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희망사항일 뿐일까.

이광형 문화과학부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