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광합성… KIST ‘솔라 트리’ 개발 본궤도
입력 2010-09-13 17:31
서울 하월곡동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본관 앞 잔디밭에는 특이한 모양의 조명등 하나가 우뚝 서 있다. 6m 높이의 이 조명등 제일 윗부분은 녹색 네잎 클로버가 하늘을 보고 펼쳐져 있고 그 아래에 전등이 달려 있다. 네잎 클로버는 태양빛을 모으는 패널(집광판)이다. 이 패널은 해가 떠서 질때까지 따라 움직이며 빛 에너지를 축적한다. 이렇게 모은 빛 에너지는 전기 에너지로 바뀌어 밤에 주변을 환히 비춘다.
KIST는 최근 기존 태양광 가로등보다 수명이 길고 전력 발생량은 훨씬 많은 ‘솔라 LED 조명등’을 개발해 시범 운용하고 있다. 이름은 ‘KIST 1호기’로 붙여졌다. 한홍택 KIST 원장은 이달 초 가진 취임 1주년 기자 간담회에서 “취임 때 아이디어로 냈던 ‘솔라 트리(Solar Tree·태양광 나무)’ 개발 사업의 첫 성과물”이라고 밝혔다. 한 원장은 지난해 8월말 “가장 효율적인 에너지 시스템은 자연에서 배울 수 있다”면서 “나무가 광합성을 하는 것처럼 태양광을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는 나무 모양의 발전시스템 개발에 나서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리고 1년여만에 첫 결실을 내 놓은 것이다.
◇친환경, 고효율의 태양광 가로등, G20 정상 회의장 비춘다=KIST는 지난해 12월 국내 유일의 ‘솔라 트리 연구 사업단’을 꾸려 연구개발에 본격 착수했다. 솔라 LED 조명등은 태양광으로부터 전기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태양전지, 전기 에너지를 저장하는 이차리튬전지, 야간 조명을 위한 고효율 LED(발광 다이오드), 전기 에너지 축적(낮)과 소비(야간)의 원격 제어 및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구성된다.
일부 지자체에 보급돼 있는 기존 태양광 가로등은 충·방전 횟수가 짧은 구형 ‘납축 전지’를 사용해 수명이 2년 이하로 짧다. 또 효율이 낮아 흐린 날씨나 겨울에 점등이 안 되는 경우도 잦다. 원격 제어 시스템이 없어 고장 나면 흉물로 방치되는 사례도 많았다.
반면 솔라 LED 조명등은 고수명·고효율 이차리튬전지를 사용해 수명을 3년 이상, 최대 10년까지 늘렸으며 전력 생산이 많은 ‘다결정 실리콘 태양전지’를 장착해 4일 이상의 부조일(흐린 날씨로 태양광에 의한 전력 발생이 없는 일수)에도 정상 작동한다.
KIST 전자재료센터 윤석진 박사는 “기존 고정식 태양광 가로등은 태양 고도가 최대인 낮 12시쯤에만 전력을 발생할 수 있는 반면, 솔라 LED 조명등에는 태양광 추적기가 장착돼 아침부터 저녁까지 태양을 따라 패널이 이동하기 때문에 30∼40% 이상 전력 발생량을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자연속 태양광을 이용하기 때문에 일반 가로등의 단점인 이산화탄소(CO왶)의 배출도 없다.
KIST는 ‘KIST 1호기’의 기능과 디자인을 개선한 솔라 LED 조명등 6기를 추가로 개발해 오는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 앞 거리에 설치할 계획이다.
◇솔라 트리 개발이 최종 목표=솔라 트리는 나뭇잎 형상의 태양 전지를 통해 받아들인 빛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꿔 저장,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장치다. 마치 살아있는 식물의 나뭇잎이 태양을 통해 광합성을 하듯이 태양광을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나무 형태의 자체 발전시스템이다.
왜 하필 나무일까? 국토 면적이 좁은 우리나라에서 거대한 태양전지 패널을 미국처럼 무작정 땅 위에 펼칠 것이 아니라 수많은 나뭇잎 태양전지들을 나무에 붙여 태양광을 흡수토록 하면 좁은 공간에서도 전력 발생 효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KIST는 이같은 발상에 따라 최근 2m 높이의 태양광 나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솔라 트리 사업단장 김경곤 박사는 “현재는 실제 나무에다 필름 형태의 얇은 태양전지를 나뭇잎처럼 붙여놓은 형태지만 최종적으로는 알루미늄 기둥에 전선이 포함된 태양광 나무 형태를 갖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로등으로 실용화하려면 높이가 6m 정도는 돼야하며 이를 통해 1㎾의 전력을 생산하는 것이 목표다. 태양광 나무에는 ‘솔라 LED 조명등’ 개발에 들어갔던 최첨단 에너지 기술들이 모두 적용된다. 여기에 압전현상(압력을 가하면 전기 발생)을 이용해 나뭇잎의 흔들림을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연구도 최근 시작됐다. 전세계적으로 태양광 가로등이 설치돼 있는 곳은 꽤 있지만 나무 형태의 발전시스템이 개발된 사례는 아직 없다. KIST는 2012년쯤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솔라 트리의 활용은 무궁무진하다. 미적 감각이 뛰어난 새로운 형태의 가로등으로 쓰일 수 있으며, 전선으로 전기 공급이 어렵거나 전기 공사 설치비가 과도하게 요구되는 장소에 설치돼 독립 전원용으로 사용될 수 있다. 일반 가정에선 전기료를 내지 않고 독립 전원장치로 쓸 수 있다.
김 박사는 “공원에 벤치가 구비된 솔라 트리를 설치할 경우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면서 급히 전원이 필요할 때 전원을 공급할 수 있으며, 길가의 가로수 대용으로 설치돼 앞으로 전기 자동차가 상용화되면 긴급 충전용으로도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