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SK와이번스 야구 감독, “야구, 후회없이 내 모든 것 다 바친다”

입력 2010-09-13 16:36


일본에서 나고 자라 한국에서 성공한 프로야구 SK와이번스 김성근(68) 감독은 꼴찌나 다름없던 SK를 맡아 단숨에 코리안 시리즈를 2연패해 야신(野神)으로 불린다. 영광스런 별명만 있는 건 아니다. 상대팀을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는 9회말 투아웃 이후에도 투수를 교체하거나 타자를 바꾸는 작전을 종종 사용해 승부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욕심 많은 노인’으로도 불린다. SK를 싫어하는 팬들로부터다. 사실 SK는 다른 구단에 비해 월등히 많은 훈련량과 강한 승부근성으로 2007년부터 3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야구팬으로부터 ‘공공의 적’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듣고 있기도 하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 리그전에서도 1등이 거의 확실하다. 그러나 김 감독이 부임하기 이전의 SK는 야구 족보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한 그야말로 별 볼일 없는 팀이었다. 그런 팀을 부동의 1위로 만들었기에 그는 칭찬과 질시를 동시에 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일 인천문학야구장 감독실에서 만난 김 감독에게서는 야신이라거나 욕심 많은 노인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인생을 정말 부지런히 살아온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결론이다. 그의 자전적 에세이 ‘꼴찌를 일등으로(자음과 모음)’를 밤새워 읽은 사전 정보와 지난해와 올해 SK의 플레이를 거의 빠지지 않고 관찰해온 직업적 호기심을 바탕으로 진행한 인터뷰의 결론은 그렇다. 만약 틀린 결론이라면 경상도 악센트의 어눌한 그의 말을 내가 잘못 들었거나 그의 포장술이 뛰어난 탓일 것이다.

-올해 SK의 페넌트 레이스 우승 가능성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우승은 올해 초 우리의 목표였습니다. 마지막 시합(코리안 시리즈를 지칭)을 이겨 새해를 즐겁게 맞자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세상사에는 준비가 제일 중요합니다. 상황에 따라 대처하려면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만 돼 있으면 위기가 오지 않습니다. SK의 위기관리 능력은 나머지 7개 구단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합니다. 뛰어난 전력은 아니더라도 조직은 강한 면모를 갖고 있습니다. 개개인은 강한 멤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멤버상으로는 롯데가 단연 우위지요.

-선수들을 너무 혹독하게 훈련시킨다는 비판이 있는 것 알고 계시죠.

“훈련이란 잠재능력을 끌어내는 것입니다. 연습하지 않으면 잠재능력을 끌어낼 수 없지요. 연습하지 않으면 동료들과의 연대의식도 생기지 않습니다. 천재는 99%의 노력이고 1%의 재능입니다. 훈련을 통해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판하는 사람은 연습이 뭔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지요. 혹독한 연습이 없었다면 오늘의 SK는 없었을 것입니다. 연습을 통해 실패에 대한 아쉬움과 도전정신도 생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연습 안 하는 사람은 쉽게 없어져버립니다.”

-재일동포 출신으로 많은 차별을 받으신 걸로 알고 있다.

“처음 재일동포고교 야구단 대표로 마산에서 경기할 때 누군가 ‘쪽발이’라고 말했는데 당시에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도 잘 몰랐습니다. 재일교포로 왔을 때는 우리나라가 외국 같은 느낌이 있었고, 이 느낌은 몇 년 동안 계속됐습니다. 재일교포라는 것은 일본에서도 외국사람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사람이라 갈 곳이 없는 사람입니다. 당시 경남고 박영길이 우리 팀 투수가 던진 볼에 머리를 맞았는데 이후에 우리를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쪽발이’라는 말에 눈에 보이지 않는 압박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후에 국가대표 4번 타자를 지낸 박영길은 경남고에 다닐 때부터 초고교급 스타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1980년대 선린상고 박노준이나 김건우에 비견되는 정도의 인기를 누렸다.)

-일본야구에 대해 가장 잘 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솔직히 일본야구는 어떻습니까.

“나보다 일본야구를 잘 아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더 많이 있습니다. 일본을 떠난지 벌써 40∼50년이나 됐습니다. 일본 프로야구는 우리나라보다 50년 앞서 시작됐지요.

기술적인 면은 우리보다 앞서있고 자기 나름대로의 야구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미국야구를 포함시키려고 합니다. 지금 볼 때는 선입관이라고나 할까, 고정 관념 속에 움직이고 있는 곳이 일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야구를 너무 높게 평가한다는 의미).”

-명문인 경기여고와 이화여대를 나온 부인도 야구를 좋아하시는지.

“야구를 좋아했습니다. 집사람이 당시 야구경기장에도 오고 그랬습니다. 장인어른은 장사와 사업하시고….”

-인생의 원칙이나 철학은.

“소위 말해서 뒤를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난 고민을 많이 하는 사람이지만 지나간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고 바로 앞을 봅니다. 남 탓하지 않고 오로지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하고, 모든 원인이 나한테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섯 군데(감독) 다니고 문제가 생겼더라도 그에 대해 후회는 없습니다. 억울하다는 주장은 별로 하지 않습니다. 야구 욕심은 있지만 나머지는 욕심 없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도 없고, 지나간 일에 대한 생각도 없고. 어떻게 하면 야구를 잘할 수 있는지, 선수를 어떻게 만들지, 어떻게 상대팀을 이길 수 있는지 그런 생각밖에 없습니다.”

-은퇴 앞둔 삼성의 양준혁은 1루까지 열심히 뛴 선수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김 감독께서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합니까.

“남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는 길을 가면 되지 어떻게 보여야될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하면 내 앞을 잠식하기 때문입니다. 순간순간의 삶이 인생 아닙니까. 야구 하나만큼은 몰두합니다. 앞뒤 안 가리고 합니다.

-야구하려는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중요한 것은 인생은 즐기면서 사는 것이죠. 야구도 즐기면서 하면 됩니다. 즐긴다는 것은 음미하는 것이지요. 놀러 다니는 즐거움이 아니라 고생 속에 즐거움이 있다는 뜻입니다. 나는 야구하면서 힘들다 또는 고생스럽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뭘 하든지 집중하고 후회 없이 살아가는 인생을 보내는 게 좋습니다. 나는 그게 야구였죠. 야구가 직업도 되고 취미생활로 끝날 수도 있지만 한번은 깊이 들어가 보고 그 속에 뭐가 있는지 경험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어떤 일을 하든지 철저해야 합니다.

-최근 어린이와 여성을 비롯해 야구팬이 엄청 늘어나 600만 관중시대가 도래한다는데.

“내가 일본에 2년 있다가 2006년도에 SK로 돌아왔습니다. 일본에서 제일 부러운 것은 팬들 속에서 야구한다는 것이었고, 우리는 우리만 야구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요즘은 팬 속에서 야구한다는 생각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문학구장도 처음 감독 맡았을 때에는 관중이 6000∼7000명이었는데 요즘은 2만명이 예삽니다. 관중도 젊은 사람들, 고등학생 등 다앙해졌죠. 야구하는 사람으로서 많은 힘을 받습니다. 팬들하고 같이하고 있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SK를 평가한다면.

“사람은 자기가 생각한 대로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마음, 어떤 자세로 하느냐에 따라, 되냐 안 되냐가 결정됩니다. 그게 바로 SK라고 할 수 있죠. 처음 왔을 때 이게 무슨 팀이냐고 생각했지만. 목표의식만 명확히 가지면 하고자 하는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SK 야구는 목적의식이 있습니다. 뭘 하더라도 확실하게 합니다. 거북이 같이.

SK 야구는 거북이입니다. 한발 한발 갈 때 욕먹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거북이처럼 한발 한발 나아가다 보면 반드시 이뤄지게 돼 있습니다. 거북이는 한발 한발 디디며 바닥을 단단하게 합니다. 자만은 실패입니다. 뭐든 준비가 된 사람이 자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만은 준비를 안 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금방 떨어져나갑니다. 4년 전 SK 멤버 가지고 4년 연속 1위 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지만, 그것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야신’이라는 닉네임을 갖고 있는데.

“야신이라…. 나는 그 수준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시라도 야구라는 자기 직업을 잊으면 안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등의 생각을 하며 훈련과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새로움을 추구해야 합니다. 신중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혜가 나옵니다. 어중간하게 하면 지혜가 생기지 않습니다. SK 선수들은 이를 반복함으로써 의식을 바꾸었고, 그러다 보니 결과가 나아졌고 즐거움을 찾게 됐습니다. 다른 팀이 우리 팀과 똑같이 연습하더라도 우리 선수들이 갖고 있는 자세가 남다르기 때문에 다른 팀을 압도할 수 있다고 봅니다.”

김성근 감독은

1942년 일본 교토 출생으로 재일교포 2세 출신이다. 교토 가쓰라 고교에 재학하던 59년 제4회 재일동포 학생 모국 방문 경기 때 고국 땅을 밟았고, 62년 한국에 완전히 정착해 기업은행 창단 멤버로 68년까지 좌완 투수로서 활동했다. 현역 은퇴 후 곧바로 마산상고의 지휘봉을 잡은 후 연이어 기업은행, 충암고, 신일고의 사령탑을 맡았다. 82년 OB의 창단 투수 코치로 프로야구에 입문한 김 감독은 84∼88년에 OB 감독을 시작으로 태평양, 삼성, 쌍방울, LG, SK 등 무려 6개 팀 감독을 맡아 한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많은 팀을 맡은 감독으로 기록돼 있다.

대담=박병권 체육부장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