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경자] 한 연예인을 위한 변명
입력 2010-09-13 17:47
“성숙한 사회라면 그가 자신을 추스릴 수 있도록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예전엔 신문을 읽지 않고 텔레비전 뉴스를 보지 않으면 세상 돌아가는 걸 잘 모른 채 살 수 있었다.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면 무식하게 되는데 무식한 만큼 정신은 건강해진다. 마음을 휘둘리지 않기 때문이다. 정직하지 못한 공직자나 탐욕의 끝이 없는 기업인을 보면 욕지기가 솟구치고, 흉악한 범죄를 알게 되면 공포감이 생긴다. 다른 사람이 너무 잘나가면 부러움을 넘어 질투와 시기심이 생기고 상대적 박탈감이나 빈곤감 때문에 존재가 주눅 든다. 그래서 나 같은 쪼다는 뉴스를 멀리하려고 애쓴다.
그런데 이제는 그게 잘 안 된다. 인터넷을 열면 ‘이래도 안 읽을래?’하는 제목들이 뜬다. 제목이 선정적이고 사뭇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낚인다는 말이 그래서 생긴 것 같다. 사람의 시선과 마음을 낚아야만 먹고사는 직업들이 있으니, 그 점도 할 수 없이 이해는 한다. 그러나 낚시가 결국은 우리 사회를 전반적으로 천박하게 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기자 개개인에게 각성을 요구하기엔 구조적 모순이 깊고 넓음을 알지만, 천박의 마지막을 향해 우리 사회 전체가 줄달음질칠 수는 없다.
요즘 ‘신정환’이 이런 속성의 화중에서 휘둘리는 중이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도박으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단다. 그런 어려움을 딛고 자신이 가진 발랄한 능력으로 삶에 지친 시청자를 위로하고 즐겁게 해 주었다. 그가 어쩌다 다시 도박에 말려들고 적당히 즐기지 못하고 돌아올 수 없게 되었을까.
오늘 아침엔 ‘신정환 말도 없이 사라져’라는 제목이 떴다. 기사를 검색했더니 그는 매니저에게 시간을 조금 더 달라고 말하곤 호텔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 기사의 제목은 ‘시간을 조금 더 달라’로 해야 한다. 그래야 당사자의 인격도 존중되고 사건의 진실에도 부합한다. 신정환이 말도 없이 사라졌다면… 이미 할머니 나이가 된 나 같은 여자는 ‘혹시 잘못될까’ 걱정한다. 그가 시간을 달라고 했다면… 아마 충격에서 자신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겠지, 상상할 것이다.
그는 얼마나 절망적이겠는가. 여태 어렵게 쌓아온 ‘여기까지’의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은 것이다. 그것도 불명예로. 게다가 수치심과 좌절감과 자기환멸은 왜 없으랴. 그를 지켜보았을 가족이며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는 지금 이 모든 것들과 헤어지게 될지 모르는 참혹한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깊은 성찰이 필요한 때다. 비겁함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함몰과 극복의 갈림길에서 그는 정직하게 자신을 대면할 용기를 불러내야 한다. 물론 누구에게라도 절망과 수치심으로부터 용기를 불러오는 일은 쉽지 않다.
성숙한 사회라면 그가 자기 자신을 추스를 수 있도록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건 비단 연예인만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에게 대한 사회공동체의 선행이며 예의다.
올해 67번째의 베니스 국제영화제 대상은 미국 영화에 주어졌다. 심사위원장인 쿠엔틴 타란티노는 “이 영화는 시작부터 우리를 사로잡았다”고 말했다. 심사위원들이 사로잡힌 영화의 내용은, 미국 영화계의 현재를 드러낸 듯하다. 감독에 의해 ‘로스앤젤레스의 초상화’라고 간단히 정리되었으니 말이다. 알코올과 마약에 의존하는 영화 스타 아버지를 바라보는 열한 살짜리 딸의 시선으로 그려진 영화는 어찌 할리우드만의 슬픈 초상화이겠는가.
오늘도 지겹게 뉴스 상단에 떠오른 엠씨몽. 그가 군 입대를 하지 않기 위해 생니를 뽑았단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국방부와 또 다른 관계기관에서 알아서 할 것이다. 우리가 세금을 걷어 그런 관계기관을 유지하는 건 그들에게 그런 일들을 제대로 처리하라는 뜻이다.
우리는 대중연예인을 아끼고 키워야 한다. 그들에게 많은 위로를 얻기 때문이다. 술과 마약과 도박으로 달려가는 연예인, 그들을 오직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부터도 연예인을 지켜야 한다. 그게 우리 사회를 성숙하게 하고 사회가 자존감을 가질 수 있을 테니.
이경자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