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그래스 교수 “호킹은 과학을 과장과 추측으로 몰아간다”
입력 2010-09-12 18:11
알리스터 맥그래스(57) 교수는 최근 스티븐 호킹의 신간 ‘위대한 설계’에 대한 영국 과학계 분위기부터 전했다. 한마디로 ‘과학이 특정 경향에 의해 납치당했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호킹은 과학을 지나치게 과장되게 부풀려 오명과 악평의 과학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2007년 ‘전투적 무신론자’를 자처한 ‘만들어진 신’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와 논쟁을 벌였던 맥그래스 교수가 호킹과의 2차전에서 어떤 반론을 던졌을까.
◇물리학 법칙 자체는 창조할 수 없다=맥그래스 교수는 우선 “중력법칙이나 물리학 등은 어떤 상태에서 발생한 결과에 대한 설명일 뿐이지 법칙 자체가 특정 세계를 창조할 수는 없다”며 “그런 점에서 호킹은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주장해온 내용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우주는 신이 아닌 물리학 법칙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호킹의 주장을 정면 반박한 것으로 물리학 법칙 자체가 무에서 유를 만들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맥그래스 교수는 이를 축구경기를 예로 들며 설명했다. 아이작 뉴턴의 운동법칙은 선수가 골을 넣는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운동법칙이 원인이 되어 골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즉 골을 넣기 위해서는 인간 존재의 개입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맥그래스 교수는 또 호킹의 “창조자를 언급할 필요가 없으며 물리학의 법칙이 이미 존재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전혀 새롭지 않다”며 “과연 물리학 법칙은 어디서 왔는가. 누가 그것을 만들었는가. 어떻게 중력이 가장 첫 단계에 존재하는가. 누가 그것을 가져다 놓았는가”를 되물었다.
맥그래스 교수는 “호킹이 물리학 이론의 ‘끈 이론’에 기초해 책을 썼다”며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를 추측에 근거한 이론으로 보고 있으며 수정이 필요한 이론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이 가장 혼란스러워하는 이 부분에 대해 맥그래스 교수는 “호킹은 추측에 근거한 이론을 추측에 입각해 해석했다”고 지적한 것이다.
◇과학의 권위는 중립성을 지킬 때 생긴다=맥그래스 교수는 자신이 옥스퍼드대에서 화학을 공부하고 분자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실을 언급하며 자연과학은 무신론이나 신론 등과는 상관없이 객관성을 지닌 지적 통합력이 전제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과학은 종교적이거나 반종교적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면서 그 사례로 리처드 도킨스를 언급했다. 도킨스가 종교 자체에 반대하기 위해 과학을 무기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수의 과학자는 과학과 종교를 상호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인정한다. 맥그래스 교수는 프란시스 콜린스의 ‘신의 언어’를 사례로 들었다. 신의 언어는 종교와 과학을 흠집 내지 않고 서로의 특징을 제대로 드러낸 작품이라는 것. 그는 “하나님 안에서의 믿음은 무신론보다 더 과학적인 감각을 가질 수 있다”며 콜린스식 접근을 칭송했다.
맥그래스 교수는 “최근 과학은 지나치게 윤리적 정치적 종교적 논쟁으로 흐르고 있다”며 “만약 과학이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납치된다면 종교적이든 반종교적이든 과학이 갖고 있던 지적 통합력은 전복될 것”이라고 경계하기도 했다.
맥그래스 교수는 22세에 옥스퍼드대에서 분자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은 과학도로서 무신론자였다가 신학으로 삶의 항로를 바꿨다. 1980년대부터 2000년까지 복음주의 신학과 기독교를 변호하는 저작들을 내놓아 금세기 최고의 복음주의 지성으로 떠올랐고, 2000년부터는 ‘과학적 신학’이란 독특한 영역을 개척해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 깊이 천착하고 있다. 이후 서구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과학적 진화론적 무신론’과 적극적인 논쟁을 벌이면서 과학과 종교 간 문제, 기독교 변증 등에 뛰어들고 있다. ‘과학과 종교’(2009), ‘도킨스의 신’(2005) 등 50여권의 책을 펴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