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신마비 재활의학 전문의 이승복 박사 “진정한 챔프는 자기 한계를 넘어선 사람”
입력 2010-09-12 21:45
“진정한 챔피언은 일등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와 불가능을 이겨내는 사람입니다.”
건국음악영재아카데미 3기 수강생 60여명이 모인 지난 11일 오전 서울 화양동 건국대 예술문화대학 소극장. 휠체어에 앉은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재활의학 전문의 이승복(45) 박사는 수강생들에게 이렇게 강조했다.
건국음악영재아카데미는 음악에 소질이 있지만 가정형편이 녹록지 않은 초등학교 3학년∼고교 1학년 학생을 뽑아 1년간 무료로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다. 건국대가 주관하고 서울시가 비용을 댄다.
수강생 앞에서 자신의 인생 역정을 소개한 이 박사는 하반신 마비로 걷지 못하는 척수장애인이다. 본래 사지가 멀쩡했던 그는 여덟 살이던 1973년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했다. “처음엔 동급생의 놀림에 시달렸어요. 어려운 이민생활 탓에 가족의 정마저 사라져 깊은 공허함을 느꼈죠.”
그는 그래서 78년 체조를 시작했고, 4년 만인 82년 전미 체조대회 마루와 도마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다. 하지만 이듬해 불행이 덮쳤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꿈꾸며 연습을 하던 중 2회전 공중돌기를 시도하다 바닥에 턱을 찧는 바람에 목뼈가 부러졌다. 이 사고로 목뼈를 지나는 신경이 끊겼고 목과 어깨, 등 근육 일부를 빼고 움직일 수 없었다.
“9개월 동안 사방이 막힌 병실에 있으면서 인생이 완전히 끝나버린 느낌을 받았어요. 다시는 걸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의사의 말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박사는 손가락을 구부리는 법부터 다시 배웠다. 필기하는 요령을 익히자 재활훈련과 대학입시를 병행했다. 자신을 차갑게 대하는 의사들을 보면서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공부를 하는 데 남보다 2∼3배 시간이 걸렸고 긴 과제를 끝낼 때마다 온몸에 경련이 일었어요. 부모님과 교수님마저도 의대 공부가 불가능할 거라고 만류했지만 계속 한계에 도전했습니다.”
이 박사는 2001년 다트머스대 의과대학 박사 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이듬해 하버드대 의과대학에서는 내과 최고 인턴(수련의)으로 선정됐다. 2005년부터 존스홉킨스대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 박사는 학생들에게 “여러분이 지금 처한 상황은 한계가 될 수 없다”며 “긍정적인 믿음과 꿈을 가지고 있다면 새로운 기회의 창이 열릴 것”이라고 당부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