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수민 (9) 생명나노과학대학 발전 기틀 마련
입력 2010-09-12 17:53
시각장애를 가진 내가 이과대학장으로 출마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다른 교수들이 이과대학장이 되어야 내가 평소 주장해 왔던 생명나노대학을 독립시킬 수 있지 않느냐고 해 마음이 바뀌었다.
단과대학장은 교수들이 추천하고 직접 뽑는다. 이과대학장에 3명의 교수가 출마했는데 결과를 보니 내가 15표이고 A교수가 14표, B교수가 11표, 무효 1표가 나왔다. 무효는 내 표였다. 내가 나를 찍는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기권한 것이다. 재투표에 들어가는데 동료교수가 이 사실을 알고 기권하지 말고 나를 찍으라고 했지만 이번에도 기권을 했다.
“하나님 제가 명예욕으로 이 자리를 맡는 것 아니지 않습니까. 생명나노공학을 발전시켜보겠다는 의도인데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기도를 하고 고개를 드니 내가 28표를 얻어 압도적인 승리를 했다고 알려 주었다.
한남대 이사회는 대덕연구단지 2만8000평에 지어진 인바이오넷 회사 건물과 부지를 매입해 놓은 것이 있었다. 나는 이곳이 생명나노대학을 독립시킬 최적지라고 판단했다. 이과대학장의 자격으로 열심히 뛴 결과 2006년 3월, 한남대 대덕캠퍼스가 만들어지고 생명나노과학대학도 독립해 이곳에 간판을 달았다. 모든 것이 기도해 온 대로 이루어졌고 나도 생명나노과학대학 초대 학장으로 옮겨 앉았다.
나는 새 학장을 맡았기에 이전에 학장으로 1년 재임한 것은 무시되고 새로 임기 2년을 더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1년만 더 하겠다고 했다. 유능한 교수님들이 많고 내가 원했던 것이 이뤄진 이상 감투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대학이 지금 정부로부터 인정을 받고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계속 이뤄지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며 보람 있게 생각한다.
나는 전임강사 시절부터 항상 오전 8시면 대학에 출근했다. 수업이 시작되려면 1시간 이상이 항상 남는데 언제부턴가 제자들에게 영어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아주 반응이 좋았다. 제자들이 나를 많이 따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잘해주고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많은 학생이 생각지 않았던 상황이나 문제를 만나면 당황하고 허둥거리게 되는데 나는 이때 조언이나 실제적인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다.
한번은 강사인 제자가 진로 때문에 고민하는 것 같아 모 대학원 박사과정에 들어가도록 주선했는데 갑자기 시험을 앞두고 장모가 돌아가셨다. 장례식과 시험 때문에 고민하는 것을 보고 강경하게 말했다.
“운동선수도 중요한 시합이 있으면 부모가 돌아가셔도 검은 리본을 달고 경기를 치른다. 학문을 연구하는 학도도 중요한 삶이 결정되는 시험엔 슬픔을 참고 응시해야 한다. 그것을 고인은 더 원하실 것이다.”
그 친구는 예정대로 시험을 치르고 박사과정에 들어갔고 지금은 교수생활을 잘하고 있다. 그때 자신에게 조언해 준 것을 항상 감사해 하는 것을 느낀다.
대학에 몸담고 있으며 적지 않은 학문적 성과를 이루게 하신 것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기능성 나노 소재분야’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자주 게재하다 보니 2002년 ABI(국제인명정보기관) 인명사전에 세계과학계를 이끄는 선도과학자로 등재됐고 영국 케임브리지 국제인명센터(IBC)의 탁월한 과학자 명단에도 내 이름이 기록됐다.
지금까지 내가 쓴 논문과 보고서는 170여편 정도다. 이 논문 내용을 응용해 제자들이 사업체도 차리고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 사이 교회 장로로서 교회 건축을 동료 장로들과 함께 준비해 완공할 수 있어 하나님께 감사했다. 내 신앙의 동력은 항상 새벽제단에서 얻어진다. 아침 미명에 부르짖는 음성에 하나님은 언제나 응답하셨고 빠짐없이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 주셨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