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가 낯선 남자와 채팅을?… 신중선 소설집 ‘환영 혹은 몬스터’

입력 2010-09-10 17:46


아내가 모르는 남자와 모니터로 음란한 대화를 하고 있다면. 어느 날 낯선 사람이 ‘전 재산을 줄테니 죽여 달라’고 부탁한다면? 신중선의 새 소설집 ‘환영 혹은 몬스터’(문이당)는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평범하지 않은 사건 10편을 다루고 있다.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일과 부딪칠 때 사람들은 문득 변하고, 그럴 때 보이는 스스로의 모습은 그저 ‘환영, 혹은 몬스터’다.



첫 번째 작품 ‘파이트 클럽’에서는 아내의 채팅이라는 외도 아닌 외도를 목격하게 된 남자가 프로레슬링 클럽에 가서 원 없이 맞아본다는 줄거리다. 다치고 피 흘리는 남편의 몰골에 깜짝 놀라 들여다보는 아내에게 남자는 말한다. “내가 무릎을 한 방 갈겼어.”

표제작 ‘환영 혹은 몬스터’는 보증을 섰다가 집을 날릴 위기에 처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빚쟁이가 된 정훈이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온다. 정훈의 인생을 주제넘게 평가하던 그는 거액이 적힌 통장을 흔들어 보이며 “내 숨통을 끊어주면 이것을 전부 주겠다”고 말한다. 반신반의하던 정훈은 뿌리치지 못하고 남자를 따라가고, 어느새 망설임은 간 곳 없이 남자를 살해한다. 문득 거울을 보니 자신의 모습은 괴물과도 같다.

그 외에도 난쟁이만한 키의 가난한 남자가 여대생을 조건 없이 도와준 뒤 뜻밖의 상황과 마주하는 ‘가장 유능했던 세일즈맨’, 사고를 당한 후 서른 살 때까지의 기억만 갖게 된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린 ‘최고의 선물’ 등이 실렸다. 평범하다 못해 가난하고 못나기까지 한 주인공들을 향한 저자의 연민어린 시선이 따뜻하게 읽히지만, 이야기는 순탄하게 흐르지만은 않는다.

소설가 서영은은 책 발문에서 “어느 지점에서 이상한 패닉에 빠져든다. 이웃에 사는 평범한 소시민들의 소소한 삶의 이야기가 마치 냄비에서 익어 가는 고구마를 젓가락으로 찔러보듯, 담담하게, 그러나 다소 냉담하게 전개되는 듯하다가 돌연 기이한 함정에 빠져들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서영은의 말처럼 주인공들이 부딪치는 인생의 함정들은 섬뜩할 정도로 가파르고 기괴하며, 독자의 관심을 끌어들이기 충분할 정도로 강렬하다.

그 강렬함은 인간성에 대한 깊은 탐구에 기반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종류의 것이다. “아버진 당신이 소리개 같다고 했지요. 소리개는 마흔이 되면 어느 쪽이든 선택을 한다고 해요. 그대로 죽던가 아니면 고통스러운 갱생 과정을 거쳐 새로 태어나든가.”(229쪽) 이 책은 갱생할지, 죽어야 할지 갈림길에 선 인간들의 이야기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