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의 죽음에 남은 흔적은 ‘거대한 사랑’…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입력 2010-09-10 17:46


미국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손톤 와일더(1897∼1975)의 ‘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샘터)는 1928년 미국에서

출간된 직후부터 오래 전에 쓰인 고전의 빛을 내뿜었다.

한 권의 소설이 탄생하면서 ‘시대를 초월한 작품’이라는평가를

받는 일은 세계문학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중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고딕소설의

면모와 함께 완벽에 가까운 도덕적 우화를 그려내고 있는

소설엔 작가가 서른 살 때 썼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을 관조하는 혜안이 깃들어 있다.

“1714년 7월 20일 금요일 정오 페루에서 가장 멋진 다리가 무너져 여행객 다섯 명이 다리 아래 깊은 골짜기로 추락했다.”



이렇게 시작되는 소설은 18세기 페루의 한 산중에 걸린 다리가 무너지면서 목숨을 잃은 다섯 명의 생을 다루고 있다. 다리는 한 세기 전 잉카인들이 고리버들을 엮어 만든 것이었다. 북이탈리아 출신의 머리카락이 빨갛고 체구가 작은 주니퍼 수사가 우연히 사고를 목격했고 다섯 사람의 돌발적인 죽음에 깃든 신의 손길을 느낀 나머지 6년에 걸친 탐문 끝에 한권의 두꺼운 책을 쓰기에 이른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며, 신에게 우리는 여름날 사내아이들이 죽이는 파리 같을 뿐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참새가 깃털 하나를 잃는 것도 신의 손가락이 쓸어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36쪽)

와일더는 소설을 통해 다섯 명의 희생자들이 남긴 삶의 궤적을 마치 현실 속에 있었던 것처럼 복원해 낸다. 예컨대, 못 생기고 말을 더듬는 몬테마요르 후작부인은 미인으로 태어난 딸 클라라가 숨막히는 엄마의 사랑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역만리 스페인으로 도망가 백작과 결혼하는 바람에 오직 편지를 통해서만 딸과 교류하게 된 사람이다. 후작 부인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수도원에서 길러진 고아 소녀 페피타이다. 페피타와 함께 죽음을 맞이한 에스테반이라는 청년은 자신의 쌍둥이 형제 마누엘이 죽어 절망에 빠진 나머지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뒤 마지못해 바다로 가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그 운명적인 정오에 다리를 건넌 사람들 가운데 피오 아저씨라는 늙은 어릿광대도 있다. 그는 여배우 카밀라 페리콜을 가르치고 후원해 왔으며 페리콜의 아들 하이메와 리마로 가던 중이었다.

우리는 이 다섯 사람의 생이 첫 눈에 보이는 것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은 복잡하고 매력적이며 너무도 인간적인 다양한 성격의 혼합체로, 다섯 명이 사회 전체 나아가 인류 전체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다. 이렇게 다섯 명이 한 날 한 시에 세상을 떠났다. 그들은 한 마차에 타고 있었고, 이들을 유일하게 이어주는 인연은 수도원의 수녀원장을 통해서다. 다섯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신의 섭리를 연구하던 수도사는 혼란만 가중될 뿐, 결국 이교도로 몰려 책과 함께 화형을 당한다. 작가가 마지막으로 밝히는 수녀원장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곧 우리는 죽게 될 것이고 그 다섯 사람에 대한 모든 기억은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우리 자신도 한동안 사랑받다가 잊혀질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 사랑이면 충분하다. 사랑을 하고 싶은 모든 충동은 그런 충동을 만들어낸 사랑에게 돌아간다.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땅이 있고 죽은 사람을 위한 땅이 있으며, 그 둘을 연결하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유일한 생존자이자 유일한 의미인 사랑!”(212쪽)

와일더는 이 작품을 쓰는 동안 여행 동반자 일을 통해 돈을 벌었다고 한다. 여행 동반자 일 때문에 유럽으로 가게 된 1926년 가을, 그는 런던 나폴리 뮌헨 베를린 파리 등지에 가 있었으며 그 결과 완성된 소설에는 그곳의 호텔과 원양 여객선의 분위기가 배어 있다. 그가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 “파리에 있을 때 베토벤 9번 교향곡을 들었고 숙소로 돌아와 마누엘의 죽음을 썼다”고 적었다. 그러나 정작 와일더가 페루를 처음 여행한 것은 1941년이 되어서다. 그는 1928년 한 해에만 이 소설 인세로 8만7000달러를 벌어들였는데 이는 요즘 돈으로 환산하면 거의 100만 달러에 달하는 액수다. 바로 그해 와일더는 이 소설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건 그가 생전에 수상한 세 번의 퓰리처상 가운데 첫 번째였다. 소설은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미국 문학 100선에 포함되었으며 와일더는 1958년 페루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