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 軍이 자랑하던 최첨단 국산 신무기 잇단 사고 왜?

입력 2010-09-09 18:36


국내에서 개발된 최신예 무기에서 잇따라 결함이 발견되고 있다. 지난 7월 21일 최첨단 전투보병장갑차로 알려진 K-21이 도하훈련 중 물에 빠져 부사관 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8월 6일에는 사격훈련을 하던 육군 주력전차 K-1의 포신이 파열되기도 했다.

군이 국내 기술로 개발했다고 자랑해 온 첨단 무기에서 이처럼 하자가 속출하는 것은 개발 전 과정이 총체적으로 부실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짧은 개발 역사, 성급한 실전배치=사고 원인으로는 우선 군의 무기개발 역사가 길지 않은 데다 연구·개발(R&D) 예산 부족에 따른 기술력 미비, 충분한 시험평가 기간을 거치지 못한 채 성급하게 실전에 배치된 점 등이 지적되고 있다.

우리 기술로 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창설되면서부터다. 그러나 80년대까지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됐고, 90년대 들어서야 국산 기술을 기반으로 한 무기류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하자 없는 무기류를 생산해낼 정도의 충분한 시간은 아니다”고 말했다.

정부는 74년부터 2007년까지 34년간 총 33조원의 예산을 무기개발 등 방위산업 개선에 투입했다. 그러나 국회 예산정책처가 2008년 펴낸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국방기술은 선진국 대비 50∼70%, 설계기술은 30∼40% 수준이다. 기술 확보를 위해 R&D 예산이 충분히 확보돼야 하지만 국방예산에서 R&D 예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 40년간 평균 5% 정도였다. 선진국들은 대부분 10%에 육박한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국방기술 개발비는 평균 32.9%지만 우리나라는 18%에 머물러 있다.

개발 단계마다 실시돼야 하는 평가 작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무기 개발의 시작 단계인 설계상에 문제가 있어도 이를 검증할 수 있는 객관적인 능력이 미흡하다. 설계를 한 기관에서 평가까지 하기 때문에 오류를 잡아내기 어렵다. 설계상 문제를 검증할 수 있는 제3의 전문 기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험평가도 문제다. 시험평가는 새로 개발된 무기가 제대로 작동되는지 점검하는 작업으로, 각종 극한 상황에서도 운용될 수 있을지 철저히 시험해야 한다. 그러나 예산상 문제와 예정된 시기에 배치해야 한다는 이유로 기본적인 사항들만 점검하고 성급하게 생산에 들어가 배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시험평가 단계에서 의심스러운 부분이 발견되더라도 근본적인 문제가 아닌 경우 일단 생산한 뒤 운영 과정에서 보완하기도 한다. 또 생산 과정에서 설계와 달리 제작되는 경우도 있다. 침수 사고가 발생한 K-21의 경우 개발 당시 470ℓ 정도를 배수할 수 있는 펌프를 설치토록 했으나 막상 생산될 때는 170ℓ가량을 배출하는 펌프가 장착됐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군이 싼 가격에 무기를 구입하기 위해 원가 인하를 지나치게 강조해 생산업체들이 내구 수명이 짧은 부품을 사용하는 등 부작용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리 소홀과 사고 대책도 미흡=일선 부대에서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전용 부동액을 써야 함에도 값싼 제품을 사용해 엔진 외벽에 구멍이 생긴 K-9 자주포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포신이 파열한 K-1 전차의 경우 관리 소홀로 포구나 포신에 이물질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K-1은 통상 1000발을 발사할 수 있지만 야광탄, 날개안정탄 등 다양한 포탄을 섞어 쓰게 되면 포신에 주는 충격이 달라 예상보다 포신이 빨리 약해질 수 있다.

사고가 발생해도 관련자 처벌은 물론 원인규명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점도 동일 사고가 반복되는 악순환을 불러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87년 실전 배치된 K-1은 아홉 차례의 포신파열 사고가 발생했지만 단 1건을 제외하곤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았다. 군 관계자는 “사고와 관련해 관련자, 납품회사가 중징계를 받거나 납품중단 등 불이익을 당한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무기류 생산 업체들은 독점인 경우가 많다. 사고가 발생해도 군이 납품 업체를 교체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군 관계자는 “미흡한 처벌이 업체들의 도덕적 해이를 키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