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체수 주는데 농작물 피해 우리 탓이라고?”… 멧돼지는 억울하다
입력 2010-09-09 21:14
개체수가 많아 과감히 사냥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멧돼지. 그러나 실제로는 멧돼지의 잦은 출몰과 농작물 피해는 주로 공단, 택지, 도로 건설에 의한 서식지 분할 때문에 가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멧돼지는 최근 10여년간 감소 추세고 피해는 개체수가 가장 적은 경기도에 집중되고 있다.
9일 환경부와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전국의 멧돼지 평균 서식밀도는 1998년 100㏊(㎢)당 5.3마리에서 2009년 3.7마리로 줄었다. 광역 자치단체별 서식밀도는 2009년 경남이 8.5마리로 가장 높았고 경기도가 0.5마리로 가장 낮았다. 다른 해도 비슷한 추세지만 2007, 2008년의 경우 충남의 서식밀도가 가장 낮고 경기도가 두 번째였다.
반면 각 광역 자치단체가 집계한 유해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 규모는 최근 3년간 경기도가 23억100만∼27억8600만원으로 가장 컸다. 2009년에는 충남이 18억8200만원으로 2위, 강원도가 15억2900만원으로 3위였다. 같은 해 전국 농작물 피해 127억1600만원 가운데 53억800만원(41.7%)은 멧돼지에 의한 것이었다.
생물자원관의 한상훈 척추동물연구과장은 “멧돼지가 먹을 것이 충분하면 굳이 농가나 마을로 내려오지 않을 텐데 최소한의 서식지가 잘려나가거나 훼손되면 대책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멧돼지가 굶게 되니까 사람과 접촉할 위험을 무릅쓰고 농경지로 내려오거나 다른 서식지를 찾아 이동하는 과정에서 사람과 자주 마주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생물자원관 원창만 박사는 “경쟁력 있는 개체는 농가로 내려오지 않지만 경쟁에서 도태된 멧돼지를 사냥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면서 “다른 멧돼지가 학습을 거쳐 손쉽게 먹이를 구하러 내려올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냥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멧돼지도 희생시킨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우리나라 멧돼지의 적정 개체수가 100㏊당 1.1마리라며 대대적인 사냥 허용정책을 요구했지만 한 박사는 “외국에서는 3∼5마리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멧돼지 피해 규모는 산림의 훼손 정도와도 관련성이 발견된다. 산림청에 따르면 2006∼2009년 여의도 면적(300㏊)의 164배인 4만9061㏊의 산림이 사라졌다. 그 가운데 경기도의 산림훼손 규모가 1만75㏊로 20%를 차지한다. 이어 경북 6724㏊, 충남 5662㏊, 강원도 4778㏊ 등으로 야생동물 피해금액 순위와 대체로 일치한다.
원 박사는 “전북 무주의 경우 군에서 마련한 농작물 피해기금으로 농민에게 충분한 보상금을 줌으로써 멧돼지 사냥 금지조치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사람과 야생동물이 모두 피해를 줄이는 공생의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