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머런 英 총리의 ‘거대한 영웅’ 부친 이안 캐머런 타계

입력 2010-09-09 21:37


신체 장애는 인생의 장애가 아니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의 ‘인생의 스승’이었던 아버지 이안 캐머런(77)이 8일 별세했다.



이안은 프랑스 남부 휴양지 둘롱에서 아내, 친구들과 휴가를 즐기던 중 전날 밤 뇌졸중과 급성 심장질환으로 병원으로 실려갔다. 이날 오전 6시 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캐머런 총리는 곧바로 프랑스로 달려갔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전용 헬기를 내줘 캐머런 총리 가족은 이안의 임종을 지킬 수 있었다.

이안이 숨을 거두기 전 캐머런 총리는 ‘내 거대한 영웅’이라고 속삭였다고 더선은 전했다. 장애를 이긴 아버지의 삶에 대해 마지막 헌사를 보낸 것이다.

이안의 친구들은 더선과의 인터뷰에서 “총리가 마지막 작별 인사를 건넨 데 안도하고, (이안이) 평화롭게 세상을 떠나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또 “아들이 총리가 된 걸 무척 자랑스러워했다”고도 했다.

캐머런 총리는 10대 시절 “아버지는 나의 롤모델”이라면서 “그는 신체적 장애가 인생의 장애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인생에서 누구든 원하는 건 얻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

이안은 1932년 런던의 부유한 주식브로커였던 아버지와 은행가 집안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안은 선천적 장애아였다. 다리가 무릎 아랫부분부터 기형적으로 짧았고 발은 뒤틀렸으며 발가락도 한쪽은 세 개, 다른 쪽은 네 개뿐이었다. 이로 인해 어릴 적 여러 번 수술을 했고, 키는 1m58에서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이안의 가정사도 불행했다. 이안의 아버지는 BBC방송 아나운서와 결혼하기 위해 어머니와 이혼했다. 자식의 장애 때문에 부부는 충돌이 잦았다고 한다. 이안은 이튼 스쿨로 진학해 집을 떠나면서 가정으로 인한 우울함을 떨칠 수 있었다. 몸이 불편했지만 크리켓과 테니스도 즐겼다. 파티를 즐기고 사람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했다.

이튼 칼리지 졸업 후 회계 일을 배워 은행에서 일하던 이안은 아버지의 주식중개회사 ‘판무러 고든’에 합류했다. 62년 메리와 결혼해 캐머런 총리 등 4남매를 뒀다.

그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20년 전 한쪽 다리를 절단한 데 이어 4년 전엔 남은 한쪽마저 절단해야 했고, 한쪽 눈의 시력도 잃었다. 하지만 늘 긍정적 삶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 캐머런 총리는 “아버지가 항상 ‘유리잔의 물이 반이나 차 있다’는 말을 할 정도로 긍정적인 분이었다”고 회상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