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용두사미로 끝난 민간인 불법 사찰 수사
입력 2010-09-09 17:35
국정 농단과 권력 사유화 의혹을 불러일으킨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에 대한 검찰 수사가 용두사미로 끝났다. 여론은 불법 사찰을 지시한 몸통과 배후를 밝히라고 촉구했지만 검찰은 8일 의혹을 남겨둔 채 수사를 종결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이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과 진경락 전 기획총괄과장 등 3명을 구속기소하고, 4명을 불구속기소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한 것이다.
그동안 진행과정을 되짚어 보면 총리실과 검찰이 이 사건의 의혹을 파헤칠 의지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지난 6월 국회 정무위에서 불법 사찰 의혹을 제기하자 총리실은 7월 2일부터 4일까지 진상조사를 벌인 뒤 5일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검찰은 그날 특별수사팀을 구성하고 9일 지원관실을 압수수색했다.
총리실과 검찰이 굼뜨게 처신하는 동안 지원관실은 조직적으로 증거를 없앴다. 5일 문서를 삭제했고, 7일 업무시간에 하드디스크들을 외부 전문업체로 빼돌려 복구할 수 없도록 훼손시켰다. 총리실이 조사 후 컴퓨터를 압류하고, 검찰이 압수수색만 빨리 했으면 결정적 물증을 확보할 수 있었다. 증거물을 없앨 시간을 충분히 준 뒤 모르쇠로 일관하는 피의자들을 취조했으니 수사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증거인멸을 사실상 묵인 또는 방조한 총리실과 검찰의 늑장 대응은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검찰은 진 전 과장에 대해 구속기한을 열흘 연장할 수도 있었지만 서둘러 기소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이러니 검찰이 대어는 놓아주고 잔챙이만 잡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전 지원관이 불법 사찰을 주도했다고 믿을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본다. 따라서 특별검사를 도입해서라도 이 사건의 실체를 낱낱이 밝힐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스폰서 검사 의혹을 수사하는 민경식 특별검사팀이 8일 1차 수사를 마무리하고 20일간 2차 수사에 들어갔지만 대상자들이 혐의를 완강히 부인해 이 사건도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로 끝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는 점을 특검은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