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라의 수다] 러시아타운

입력 2010-09-09 17:47


서울 지하철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역에서 내려 5번이나 7번 출구로 나가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러시아 문자로 씌어진 이정표를 따라가면 러시아 식당과 찻집, 빵집, 그리고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특산물을 파는 가게들이 나온다.



단골 음식점 이름은 ‘고스티느이 드보르’인데 내가 가면 종업원이 벌써 “바랭키 드실 거죠?” 한다. 바랭키는 감자나 양배추를 넣은 만두의 일종으로 아주 맛있다. 이 식당은 전형적인 러시아 가정의 거실처럼 꾸며져 있다. 장식이 많은 가구가 있고, 예쁜 사기그릇을 사용하며, 대형 텔레비전에서는 러시아 드라마나 뮤직비디오가 나온다.

하루는 이 식당에서 아주 특이한 손님들을 보았다. 스무 명쯤 되는 그룹이었는데 옷도 잘 차려입고 세련돼 보이는 젊은 여성들이 러시아어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식탁 머리맡에 앉은 우아한 금발 아가씨가 사회자인 것 같았다. 그 옆에 앉은 앳된 얼굴의 소녀는 열심히 기록을 하고 있었다. 러시아어를 모르는 나는 독서토론회 정도로 추측했다. 그러나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토론이 끝난 뒤 설명을 들어보니 그 모임은 ‘성공한 러시아 여성들의 모임’으로 한국 내 러시아 여성의 이미지 쇄신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나는 이해가 간다는 표정으로 “어려운 일을 하고 있네”라고 말해주었다.

내가 아는 러시아 여자친구들은 학생이거나 잘 나가는 가게의 사장님, 과장급 회사원들이다. 그들은 모두 나보다 한국어 실력이 좋고 영어와 그 밖의 언어에도 능숙하다. 그러나 한국에서 러시아 여성들은 창녀, 싸구려 모델, ‘나가요’로 매도당하기 일쑤다. 러시아인뿐 아니라 러시아인과 비슷한 외모의 외국인 여성도 마찬가지다.

내 외국인 친구들은 모두 이 테마에 대해 할 말이 많다. 대부분 지하철, 택시, 길거리에서 일어나는 불유쾌한 일화들인데 보통은 삐딱한 시선과 성을 암시하는 발언, 모욕적 언행 정도로 끝나지만 더 심한 경우도 있다. 친구 중에 단정하고 우아한 옷차림을 즐기는 프랑스인 대학 강사가 있다. 그녀가 산부인과에 갔는데 병원 원장인 남자의사가 러시아 창녀는 받지 않는다며 진료를 거부했다고 한다. 그 의사는 의사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심각한 차별행위를 했다.

차별은 공적 영역에서도 발생한다. 독일에서 오래 살아 베를린과 서울을 자주 왕래하는 폴란드인 친구가 있다. 마지막으로 서울에 들어오던 날, 그녀는 인천국제공항에서 따로 불려가 한 시간 동안 심문을 받았다. 담당 공무원은 왜 그렇게 자주 두 나라를 왔다 갔다 하는지, 직업이 무엇인지 등 질문을 해댔다. 그리고 한 시간이 지나서야 한국에서 ‘일하면’ 법에 걸린다는 말과 함께 풀어주었다.

그저 죄를 저지를 것 같다고 해서 사람을 붙잡아 놓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만약 한국 여성이 외국에서 그런 일을 당했다면 언론이 나서고 네티즌이 비난하는 스캔들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 여성이 한국에서 이유 없이 수모를 당하면 ‘단순한 착각’이나 ‘오해’로 치부하면서 한국에는 그런 종류의 차별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다.

베라 호흘라이터(tbs eFM 뉴스캐스터)

번역 김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