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낙마한 김태호, 그 후… 8일 만에 끝낸 해인사 칩거 “미국 간다더라”

입력 2010-09-09 19:35


“…무엇보다도 혹독하게 제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기회로 삼아가겠습니다.”

그는 두 번 허리를 깊이 숙였다. 개인사무실이 있는 서울 광화문 내수동 ‘경희궁의 아침’ 빌딩 로비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미소로 받아넘긴 뒤 문을 나섰다. 지난달 29일, 내정 21일 만에 국무총리 후보직을 사퇴한 김태호(48) 전 경남지사가 대중에게 보인 마지막 모습이다.

신기루 같았다. 40대 ‘젊은 나이’에 일약 총리 후보로 발탁돼 중앙정치 무대에 전격 등장했던 그는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몰락했다. ‘차기 대권주자’에서 ‘재기 불능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딱 3주였다.

그 후 1주일

사퇴 기자회견을 마치고 자동차에 올라탄 그는 입을 다문 채 앞만 바라봤다. 사진기자들이 차를 둘러쌌다. 카메라 플래시가 어지럽게 터졌다. 거창군수였을 때 군청 직원으로 만나 경남지사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최기봉씨가 운전대를 잡았다. 차 안에서 둘은 말이 없었다.

차는 곧장 남쪽으로 향했다. 네 시간을 달려 경남 합천 해인사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다시 20여분을 달려 고불암에 닿았다. 해인사의 가야산(1430m) 암자 23개 중 가장 높은, 해발 920m에 있는 암자다. 해인사 주지 선각 스님이 이 암자의 주지이기도 하다. 김 전 지사는 이곳에 짐을 풀었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그와 해인사의 인연은 깊다. 경남지사 시절, 고려대장경 간행 천년이 되는 2011년에 ‘대장경 천년 엑스포’ 행사를 개최하고자 해인사와 긴밀히 협의했었다. 자연히 선각 스님과 가까워졌다. 해인사는 그의 고향 거창에서도 멀지 않다. 해인사가 들어서 있는 가야산을 넘어서면 고향 마을이다. 지사 시절 인연, 고향 인근, 첩첩산중의 암자… 잠적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짐은 단출했다. 간단한 옷가지와 책 5권이 전부였다. 고도가 높은 고불암에선 주변 산의 봉우리가 내려다보인다. 오가는 이도 많지 않아 사방이 조용하다. 그는 일주일 동안 방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은 채 ‘성찰의 시간’을 보냈다. 김 전 지사 측근은 “말 그대로 ‘두문불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머무는 곳 근처엔 일반인이 접근하지 못하게 절에서 통제하고 있다”고 전했다.

칩거는 오래가지 않았다. 일주일이 갓 지난 6일 새벽, 암자를 떠났다. 부인과 아이들, 장모가 살고 있는 거창군 거창읍 대경넥스빌 아파트에 들렀고 지인 몇 명을 만났다. 그는 다시 서울로 향했다.

잘못된 기억… “박연차씨는 군수 때도 만나”

“잘못된 기억으로, 정말 잘못된 기억으로….”

신중하게 써내려갔을 사퇴 기자회견문에서 유일하게 반복된 단어는 ‘잘못된 기억’이었다.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과 관련, 그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처음 알게 된 시기에 대해 자꾸 말을 바꾸다 결국 사퇴했다. 그의 칩거 1주일은 억울함을 다스리는 시간이기도 했다.

“지금도 자려고 누우면 (목에 손바닥을 대며) 여기까지 뭐가 차올라서 잠을 제대로 못 주무세요. 기억이… 진짜 기억이 잘못돼서…, (사퇴하고) 나중에 생각해보니 군수 때도 (박연차씨를) 만난 적이 있더래요. 그만큼 기억이 부정확했던 거죠….”

김 전 지사가 거창군수를 지낸 기간은 2002∼2004년이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그는 2007년 이전에는 박씨를 알지 못했다고 했다가 2006년 10월 골프회동이 드러났고, 같은 해 2월 둘이 함께 찍은 사진까지 나오면서 낙마했다. 그런데 박씨를 만난 게 군수 재직 때라면 이보다 훨씬 앞선 시절이다.

7일 거창 집에서 만난 부인 신옥임(46)씨는 지쳐보였다. 남편이 아직도 많이 힘들어한다고 했다.

“기자들이 어떻게든 정치적으로 타격을 주려고 달려드니까…. 이번엔 저희가 운이 거기까지밖에 안됐던 거죠. 할 말은 많지만 무슨 말만 하면 그게 커져서 달려드는 형국이 계속 될 테니까. 지금은 전혀 아무 말씀도 못하실 거예요.”

김 전 지사는 잠행 중이다. “평생을 함께 가야 할 동지”라고 했던 안상근 전 경남 정무부지사조차 “전화를 걸어오지 않으면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할 정도다.

김 전 지사의 부모님 상황도 비슷하다. 6일 찾은 거창군 가조면 부산마을 고향집은 텅 비어 있었다. 네 남매를 위해 아버지가 심었다는 소나무 네 그루만 집 앞뜰에 있었다. 집은 을씨년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동네 주민들은 “아버지가 집 전화번호, 휴대전화 번호까지 다 바꿨다. 바뀐 번호를 물어볼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부모 충격이 너무 크다”고 했다.

해외 유학을 준비 중이라는데…

그는 올해로 만 48세다. ‘한국의 케네디’를 꿈꾸던 정치인이 은퇴를 생각하기엔 너무 젊다. 그래서인지 그의 향후 행보에 대한 이야기가 벌써부터 돌고 있다.

현재 해외 유학을 준비 중이라는 설이 가장 신빙성 있게 나온다. 지난 주말 거창 인근에서 김 전 지사를 만났다는 지인은 “외국에 공부하러 나갈 것 같더라. 미국 쪽인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외국 나간다는 것은 이번 (2012년) 대통령선거는 접었단 얘기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그 다음을 염두에 두고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분위기는 다른 이들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부인 신씨는 “(아직 젊으니까) 앞으로 뭘 할지 지인들 만나서 이야기 듣고 고민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여러 분들을 만나야 해서 서울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측근도 “전국 각지에 있는 지인들을 두루 만나면서 여러 조언을 듣고 계신 것으로 안다”고 했다. 고향 마을에선 “서울에 연구소를 차렸다”는 소문이 이미 파다했다.

그의 재기는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청문회에서 상처를 입긴 했지만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의 외상은 아니라는 평가다. 지역에서 그에 대한 지지는 여전히 굳건했다. 합천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55)씨는 보좌진을 탓했다. 동네 사람들도 대부분 김 전 지사의 낙마를 안타까워했다.

“청문회 준비를 너무 부실하게 했다. 그건 보좌하는 사람들이 잘못한 것 아닌가. 도지사가 지역 기업인을 알고 지내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큰 흠이 되지 못한다.”

김 전 지사는 지난 6월 30일 경남지사 재선 임기를 마쳤다. 서울 내수동 개인사무실을 마련한 건 이 무렵이다. 그는 7월 5일부터 2박3일 동안 친가·처가 어른들과 함께 백두산에 다녀온 후 평일엔 줄곧 서울 사무실에 머물렀다. ‘지사 불출마’를 선언한 그가 서울에 사무실을 얻자 무성한 소문이 피어올랐다. 서울 사무실은 그의 중앙정치 무대 입성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8일 내수동 사무실을 찾았다. 문은 닫혀 있었고 우편함엔 찾아가지 않은 조간신문이 가득했다. 총리 후보 사퇴 후에도 출근하던 직원 2명조차 나오지 않은 지 며칠 지났다고 한다. 건물 관리인은 “퇴실하려면 관리비, 가스비 등을 정산해야 하는데 하나도 하지 않았다. 아직 퇴실 절차를 밟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지, 지금은 알 수 없다.

“소유주가 방을 내놓은 것으로 안다. 새 임차인만 구하면 바로 퇴실할 것이다.” “아직 매물로 나왔다는 얘기를 못 들었다. (김 전 지사가) 다시 돌아오려고 방을 붙잡고 있는 거 아닌가?”

김 전 지사의 사무실 처분 여부에 대해 부동산중개업자들의 말은 제각각이었다. 그의 행보도 아직은 오리무중이다.

합천·거창=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