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학의 ‘5피트 선반’을 아십니까
입력 2010-09-09 17:44
하버드 인문학 서재/크리스토퍼 베하/21세기북스
미국 하버드대학 캠퍼스에서는 ‘5피트(153cm) 선반’이라는 말이 회자된다. 남북전쟁 직후인 1869년부터 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09년까지 40년 동안 하버드대 총장을 지낸 찰스 엘리엇이 1909년에 편집해 내놓은 인문학 고전 선집 ‘하버드 클래식’을 일컫는 말이다. 빨간 표지에 두툼하기 이를 데 없는 ‘하버드 클래식’ 50권을 1년 안에, 그러니까 거의 한 주에 한 권씩 독파한 남자가 있다. 미국의 에세이스트인 크리스토퍼 베하는 맹목과 방황의 나날이었던 20대 청년기에 외할머니 집에서 ‘5피트 선반’을 발견한다.
그의 ‘하버드 클래식 읽기 프로젝트’를 설명하려면 이야기는 그의 외할머니에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는 투병 중인 미미 이모로부터 애서가였던 외할머니가 젊은 시절, 학교를 다닐 수 없어 하버드 클래식을 읽으며 지식과 교양을 쌓았다는 사실을 우연히 듣고 그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는 정식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지식욕’을 가지고 있던 젊은 날의 외할머니를 알아보려는 생각으로, 한편으로는 휘청거리는 자신의 인생에 필요한 해답을 구하려는 바람으로, 1년 안에 전집을 독파할 것을 결심한다.
“2006년 12월에서 2007년 1월로 넘어가던 섣달 그믐날 밤, 나는 맨해튼 요크 애비뉴에 있는 부모님 서재에 홀로 앉아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 형, 누나, 매형, 사촌들은 미미 이모가 마련한 조촐한 파티를 즐기러 나갔고, 저 아래로 스무 블록 떨어진 곳에서만 100만명 가까운 인파가 타임스 스퀘어에서 몸을 떨며 서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중간쯤에서 ‘프랭클린 자서전’ 첫 장을 읽었다.”
그는 다음날 작은 수첩을 만들었다. 독서 계획과 독후감을 적기 위한 수첩이었다. “아들에게. 프랭클린의 ‘자서전’(1788)은 이렇게 시작한다. 새해 첫날을 맞는 밤, 이 단어는 마치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앞선 세대와 소통을 시작하겠다는 선전포고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2권으로 넘어간 그는 플라톤의 세 대화편인 ‘변론’ ‘크리톤’ ‘파이돈’에 도전한다. “세 대화편은 소크라테스의 고난을 다룬 작품이다. 앎에 대한 겸손은 소크라테스 특유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반어법의 대가이기 때문에 자신이 무지하다고 주장할 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좀 애매하다. 이러한 주장은 진정한 지식을 습득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1월 말에 미미 이모는 병원에 다시 입원한다. 발에서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이 완벽하게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병실을 지키는 동안에도 책읽기를 계속한다.
그는 병실에 의자가 하나밖에 없어서 복도 어딘가에 남아 있는 의자를 찾아야 했고 진도를 맞추기 위해 늦은 밤 시간에 책을 읽었다. “아우렐리우스는 플라톤을 읽었고 그러고 나서 아우렐리우스는 죽었다. 밀턴은 아우렐리우스를 읽었고 그러고 나서 밀턴은 죽었다. 그리고 나는 침대에 앉아 밀려오는 죽음과 싸우며 밀턴을 읽는다. 다 그런 것이다.”
그는 고전을 읽는 동안 이모의 병과 가족의 삶을 돌아보며 삶의 지혜를 얻고 고통을 이겨내는 법을 깨닫는다. 단순한 고전에 대한 설명일 줄 알았던 글이 저자의 삶과 결합하는 순간, 누구나 다 알던 고전은 전혀 새로운 작품이 되어 마치 강렬한 스파크가 일듯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그가 쓴 서평엔 개인의 삶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고전은 우리 삶에서 동떨어진 유물이 아닌 아주 가까이에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그는 보여주고 있다.
50권의 읽기가 끝났을 때, 그는 ‘하버드 클래식’의 편집 방식에 대해 한 마디 불만을 털어놓는다. 그것은 하버드 클래식 안에 문학작품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삶이 지닌 다양한 스펙트럼을 표현한 문학 장르가 간과된다면 절망적이다. 이 전집을 개정해야 한다면 제일 먼저 제인 오스틴이나 조지 엘리엇이 쓴 회고록과 자서전을 집어넣어야 할 것이다.”
저자가 마치 옆에서 책을 읽어주듯 고전을 조곤조곤 설명하는 친절함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게다가 50권의 고전을 다 읽은 이후에 그가 들려주는 독서 후기는 더욱 신뢰감을 갖게 하는데 그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주인공 안나와 브론스키의 연애와 평행하게 가는 또다른 줄거리의 주인공인 레빈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이런 새로운 감정 때문에 갑자기 행복해지거나 머릿속이 밝아지지도 않았다. 어느 것 하나 놀랍지 않았다. 나는 믿음이 뭔지 모르지만 이러한 감정은 마치 경험을 통해서는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다가왔고 내 영혼에 단단히 뿌리내렸다.”
하버드 클래식을 통독했다하더라도 우리의 삶은 눈에 띄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영혼이 아주 조금씩 치유되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