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1년때 하반신 장애… 붓·도화지로 세상과 소통
입력 2010-09-09 17:42
‘달달한 인생’ 펴낸 카투니스트/지현곤
카투니스트 지현곤(41)씨의 세계는 두 평 반짜리 골방이다. 지씨는 좀체 문밖으로 나가지 않지만, 그 세계 안에는 밝게 빛나는 달도 있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뿜는 대나무 숲도 있으며, 각종 생물들이 대재앙을 피해 숨어든 노아의 방주도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척추결핵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후 밖에 나갈 수 없지만 붓과 도화지만 있다면 무궁무진한 상상의 세계를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1일 세상에 나온 ‘달달한 인생’은 장애를 딛고 유명 카투니스트가 된 지씨의 인생 성공사다. 40년간 살아오면서 그를 지탱해준 철학도 알 수 있고, 다채롭고 이국적인 그림 100여점도 볼 수 있다.
8일 전화로 지씨를 만났다. 인터뷰 내내 ‘도움을 주고 싶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저자에게서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작년에 개인 전시회와 행사로 바쁘게 보냈어요. 마음이 지쳐있었는데 출판사 생각의 나무에서 에세이를 내자고 연락이 왔지요.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이 책이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출판사에도 도움이 된다면 감사하다는 마음에 책을 냈어요.”
제목이 ‘달달한 인생’인 이유는 저자가 달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거동이 불편해서 하늘의 달을 동경했어요. 게다가 달은 오직 하나고 누구나 달을 보면 신비감을 느끼잖아요. 출판사에서 이 제목을 제안했을 때 진짜 제 인생은 달, 달 해온 인생이니까 마음에 쏙 들더군요.”
책에 실린 수십여점의 그림들은 짧게는 보름, 길게는 한달을 잡고 그린 땀의 결실이다. 특히 저자는 큰 배 뒤에서 한 남자가 조용히 낚시를 하는 ‘마음’(36쪽)을 인상깊은 작품으로 꼽았다. 그는 “지난해 전시회를 열다보니 자꾸 욕심이 생겼다. 그 욕심들이 내 앞의 커다란 벽처럼 느껴졌다. 이 벽을 지나면 더 넓은 세상을 만날 텐데, 작은 문이라도 하나 내어 지나면 그 끝에 가서 태연히 쉴 수 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저자는 점점 건강이 나빠지고 노안이 심해져 그림 그리기가 힘에 부친다. 특히 책에 여러 점 실린 ‘노아의 방주’ 시리즈를 그릴 때는 작업과 쉼을 반복해 1편 당 한달 이상이 소요됐다.
“방주 너머로 보이는 작은 집들과, 노아 할아버지가 들고 있는 작은 화분을 그릴 때는 색을 채웠다 지웠다하면서 힘들게 그렸어요. 2년 전까지만 해도 한달에 2∼3점을 그릴 수 있었는데, 요즘은 1점도 힘에 부쳐요.”
요즘 저자의 마음에 작은 바람이 일고 있다. 40년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지만, 이제는 사람들과 그림 외로도 소통하고 싶은 것. 그는 “이제는 독자들, 팬들과 만남을 갖고 싶다. 예전에는 가급적 안 나가려고 했지만 앞으로는 출입이 가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