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갯벌로… 할머니의 정겨운 ‘추석상 차리기’
입력 2010-09-09 17:44
할머니, 어디 가요?밤 주우러 간다 !/글·그림 조혜란/보리
책을 펼치면 그림 지도가 나온다. 바닷가에 위치한 갯마을 지도다. 모래내 할머니네 집, 지게 소년네 집, 정심이 언니네 집, 별이 할아버지네 집, 그리고 이 그림 동화의 주인공인 옥이네 집도 보인다. 바다가 가까운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자가 기억을 더듬어 갯마을의 가을을 먹거리와 함께 재현해 놓았다.
저자의 분신이기도한 일곱 살 옥이의 일상은 할머니와 함께 하는 하루하루다. 옥이는 할머니를 따라 도라지를 캐러 뒷산에 간다. “가을 벌한테 쏘이면 약도 없다네, 약도 없어!” 동네 할머니들이랑 별이 할아버지가 산에 가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는데도 할머니는 괜찮다며 산에 오른다. 남보랏빛 도라지꽃 앞에서 할머니의 코는 유난히 실룩인다. 그러다 기어코 꽃 속에 있던 벌에게 눈꺼풀을 쏘인 채 내려온 할머니는 이마에 물수건을 올려놓고 몸져눕는다. 옥이는 왜 할머니가 동네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고 도라지를 캤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음날 할머니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일어나 옥이를 데리고 갯벌로 나간다. 황바리를 잡아 게장을 담으려는 것이다. 옥이는 부드러운 뻘에 몸을 비비며 놀다가 별안간 악, 하는 비명을 듣는다. 할머니가 황바리에게 손가락을 물려 지르는 소리다. 양동이 가득 황바리를 잡은 할머니는 저물녘에 집으로 돌아와 게장을 담느라 밤새 간장을 끓인다. 다음날 할머니는 황바리 게장을 이고 시장에 나간다. 이번에도 옥이는 왜 할머니가 억척스레 황바리 게장을 만들어 장에 내다파는 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튿날은 할머니가 머리에 찌그러진 냄비를 쓴 채 밤을 주우러 간다. 주운 밤들은 약밥에 들어가고 밤 송편으로 빚어진다. 그제서야 옥이는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할머니의 추석상 차리기는 이렇게 산과 갯벌을 오가며 일찍부터 시작된다.
할머니의 손은 음식이 나오는 손이다. 추석 전날 객지에 나간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와 노란 봉투와 선물을 건네자 할머니의 입은 광주리만큼 벌어진다. 우리 모두의 한가위가 얼마 남지 않았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