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정윤희] 마음이 고픈 사람들
입력 2010-09-09 17:37
지난여름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 시인을 만났다. 인터뷰하기 위해 그가 살고 있는 전주에 다녀왔다. 시인은 시란 삶의 일부라고 고백했다. “시를 쓰는 의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핵심에 가닿고 싶은 것입니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우리 삶을 자세히 보아야 하는데, 그곳에는 무수한 삶이 복잡하게 엉켜 있습니다. 그것을 잘 읽고, 그것들이 말해주는 것을 받아쓰면 됩니다.”
소설을 써보겠다며 습작을 하던 시절에 내가 가지고 있었던 습관은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일부러 모란시장이나 소래포구를 찾아가서 그곳에서 펼쳐지는 사람 사는 모양들을 눈에 담느라 안간힘을 쓰던 생각이 난다. 그 습관이 몸에 배었는지 지금도 버스를 타거나 길을 걸을 때,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나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도 그네들의 행동을 염탐하느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사람들에게 새겨진 세월의 주름들을 보노라면 마음이 숙연해지기도 하였다.
비록 소설가로 등단하지 못하였지만 습작시절에 익힌 관찰은 나에게 다른 선물을 주었는데, 바로 사람을 향한 그리움이다. 직업상 책을 지은 저자나 기업의 CEO를 인터뷰하며 그리움을 해소시키고 있는데, 글을 쓰면서 문득 외양만으로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추측해 본다는 것이 참 하릴없는 일임을 알았을 때, 알 수 없는 죄책감과 슬픔이 밀려왔다. 겉모습은 선하게 보일지라도 마음은 보이지 않으니 사람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는 길은 요원한 것일까.
이런 생각은 디지털 시대인 요즘에 더욱 간절해진다. 지하철을 타면 좌석에 나란히 앉은 사람들이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책 제목처럼 광활한 세상에 사람들은 손바닥만한 휴대폰에 고개를 조아린다. 시대가 좋아져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들이 빠르고 편리해졌지만 저마다 마련해 둔 세상 속에서 사느라 사람들 사이의 거리는 더 멀어지는 것 같다. 빈곤해진 소통으로 우리는 마음의 허기를 느끼고 산다.
슬로 라이프의 제창자인 쓰지 신이치는 저서 ‘행복의 경제학’에서 “행복은 결국 자신이 살고 있는 땅과 조화이자 주변 사람들과의 깊은 유대감, 그리고 얼마나 느린 시간을 살아내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지구와 이어지고 자신과 이어지고 사람들과 이어지는 것이야말로 행복의 근원임을 돈이나 물건이 아닌 충분한 시간을 가진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다”라고 조언한다.
아무리 잘난 기계에 내 마음을 비추어도 정신적인 허기는 채워지지 않을 터. 사람이 사람에게 가닿을 수 있는 방법은 서로 믿고 사랑할 때이리라. 시인의 말마따나 세상을 들여다보는 일은 세상을,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라는 말과 다름없을 것이다. 마음이 고픈 시대에 허기를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는 방법은 멀리 있지 않다. 그래서 사람을 향한 그리움은 멈추지 않는 것인가.
정윤희 출판저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