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수민 (8) 실명 숨기고 강의 6년 만에 장애 고백
입력 2010-09-09 17:50
외워서 하는 강의가 계속됐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내가 완전히 실명한 것을 몰랐다. 오히려 강의 수준이 높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말이 믿기지 않았던지 강의 준비를 함께하던 아내가 처제를 내 강의실로 보내 직접 들어보게 했다. 아내는 여동생이 들려주는 말이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언니, 형부가 그렇게 말을 잘하는 줄 몰랐어요. 강의도 얼마나 재미있게 하는지 박수가 다 나오더라니까요. 강의 내용을 미리 암기한 부분에다 생각나는 것을 추가해 강의했어요. 언니, 정말 형부 대단하세요.”
하나님께서는 내게 눈을 잃게 하셨지만 대신 비상한 암기력을 주셨다. 예전에도 암기력이 좋은 편이었는데 그 능력이 3배 정도 증가한 것 같았다. 웬만한 것은 두 번 정도 읽으면 그대로 입력이 됐다. 자살하려던 내게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도와주겠다’고 하셨던 것에 이 부분도 들어간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대학에서의 강의가 인기를 얻자 대학원 강의도 맡게 되었다. 화학과 대학원 과정은 강의보다 연구실에서 실험하는 것이 더 많다. 직접 실험을 통해 과정을 확인하며 이론을 정립해 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강의만 하는 대학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어 시력이 없는 내겐 강의를 맡는 것이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 강좌에 학생이 끊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내게 배운 학생들이 지도교수로 나를 택하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했다고 한다.
내가 강의 준비를 열심히 한 이유도 컸지만 연구비를 잘 받는다고 소문이 났던 것이다. 화학과 대학원생은 실험 실습비 때문에 일반 문과보다 학비가 훨씬 많이 든다. 그런데 이 연구내용을 과학재단이나 학술진흥재단에 보내 공학적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면 상당한 연구비가 나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지도한 석사 학위자는 56명, 박사 학위자는 10명이다. 적지 않은 인원이라고 하지만 나로선 더 많이 지도하지 못한 것 같아 그저 아쉬울 뿐이다.
1990년 어느 봄날이었다. 새벽기도회를 마친 후 묵상을 하던 중에 고린도후서 12장 9절의 말씀이 들어왔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하고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니라”
사도 바울이 한 이 말씀에 갑자기 깊은 찔림이 왔다. 그것은 내가 실명한 것을 크게 부끄럽게 여겨 나의 약한 것(실명)을 가능한 사람들에게 숨기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읽으니 바울처럼 약한 것을 기뻐하고 자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 능력이 온전해진다고 했던 것을 기억했다.
실명 6년이 지나서야 나는 약한 것을 고백하기 시작했다. 먼저 학부 학생과 대학원생들에게 내가 실명한 것을 밝혔는데 모두들 깜짝 놀랐다. 그리고 관청에 장애인 등록을 했다. 당연히 1급 판정이 나왔다.
나는 장애인 혜택을 안내 받으며 한국도 복지수준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았다. 철도와 비행기의 할인은 물론 자동차세 면세와 각종 공과금 할인에다 장애인용 특수컴퓨터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외부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오면 이를 소리로 자동으로 전환시켜주어 여간 편리하지 않았다.
나는 뒤늦게나마 점자 공부에 몰입했고 그동안 듣기만 했던 말씀을 점자성경으로 읽을 수 있게 됐다. 내가 마음을 열고 모든 것을 인정하니 성경말씀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21세기는 생명공학과 정보통신공학이 공학기술의 양대 산맥이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서는 ‘신소재공학과’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이를 한남대에 설립, 초대 학과장을 맡았다. 4년간 학과장으로 지냈는데 갑자기 교수들이 내게 이과대학 학장으로 출마할 것을 권유했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