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청와대 비서관 3인에 3가지를 묻다… ‘公正’이란 무엇인가
입력 2010-09-09 13:42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지난달 27일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청와대 확대비서관회의에서 ‘공정한 사회’를 주제로 강의했다. 통상 40∼50명 참석하던 회의에 행정관들까지 400여명이 앉아 있었다.
강의 말미에 질문이 나왔다. “공정한 사회로 가려면 시민의식의 변화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윤 교수는 은행이나 병원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번호표’ 얘기를 꺼냈다.
지난해 그가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 갔을 때다. 기계에서 번호표 뽑아 기다리다 전광판에 자기 번호 표시되면 접수대로 가곤 했는데, 그날은 이 시스템이 고장이었다. 대신 병원 직원이 마이크로 이름을 불러 차례를 알려줬다. 그 소리가 잘 안 들려서 이름 부를 때마다 사람들이 접수대로 몰려갔다.
“혼란이 벌어졌어요. 평소 1시간씩 말없이 기다리던 사람들의 시민의식이 갑자기 낮아진 걸까요? 번호표는 공정함을 보장해주는 제도예요. 반면에 이름 부르는 건 자칫 억울해질 확률이 높죠. 마이크 쥔 사람이 착각하거나 내가 잘못 들으면 순서가 뒤바뀌니까. 공정한 시스템이 갖춰지면 사람들은 1시간도 기다리지만 그게 없을 땐 1분도 못 견딥니다. 공정은 그런 겁니다.”
공정한 사회는 공직자나 부유층의 윤리의식보다 ‘게임의 룰’로 만들어진다는 얘기다. 그런 룰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말에 한국사회는 기다렸다는 듯 요동치고 있다. 궁금증은 이렇다. 공정한 룰은 무엇인가, 왜 지금 이 말이 나왔나,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지난 7일 윤 교수와 김주성 한국교원대 교수, 김영수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을 차례로 만났다. 김 비서관은 이 대통령이 ‘공정한 사회’를 처음 언급한 광복절 경축사를 썼고, 김 교수는 지난 5일 장·차관 워크숍에서 ‘공정한 사회’를 강의했다.
Q1-공정한 '룰'
정치철학을 전공한 윤 교수는 확대비서관회의 강의를 준비하며 광복절 경축사를 다시 정독했다고 한다. 세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공정한 사회는 출발과 과정에서 공평한 기회를 주되,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사회입니다. 공정한 사회는 개인의 자유와 개성, 근면과 창의를 장려합니다. 공정한 사회에서는 패자에게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집니다.’
“존 롤스의 ‘정의론’이 바로 연상되는 말이에요. 롤스의 주장은 이겁니다. 정의로운 사회에선 모든 개인이 평등한 자유와 권리를 가져야 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한 불평등한 조치는 정당하다. 정의(justice)로운 사회는 공정(fairness)해야 하고, 공정하려면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겁니다. 경축사의 패자부활론과 맥이 닿아 있죠.”
롤스(1921∼2002)는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정의론을 가르치던 진보적 자유주의 철학자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57) 교수가 그의 강의를 이어받았다.
“롤스의 주장이 제도화된 게 미국의 소수자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입니다. 대학에 흑인 등 소수인종 학생이 일정 비율 이상 입학하도록 쿼터를 두고, 정부가 공공건설 프로젝트를 발주할 때 소수인종 회사에 가산점을 줍니다. 백인 입장에선 불평등한 제도지만 사회 전체로는 그래야 공정하다는 거죠. 국가 차원의 모델을 찾자면 진보 학자들이 많이 연구하는 독일이 가까울 겁니다. 미국보다 정부가 훨씬 적극적으로 개입해 강력한 복지정책을 펴는.”
김영수 비서관은 이런 해석에 선을 그었다.
“우리(정부)가 얘기하는 ‘공정한 사회’의 이론적 배경이 롤스는 아닙니다. 거기까지 간 건 아니고요. 한국에 맞는 공정한 사회 모델을 새로 개척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는 정부가 구상하는 공정한 사회를 크게 세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 천부적 재능이 다른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가난해서 재능을 발휘 못하는 건 안 된다.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 둘째, 기회를 살리는 과정이 공정해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은 노동을 하고 다른 임금을 받는 건 공정하지 않다. 셋째, 그렇다고 정부가 시장에 너무 개입할 순 없다. 시장을 유지하면서 불평등을 완화하는 건 가진 자들의 책임이다.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인 워런 버핏의 기부 운동 같은 것도 공정한 사회를 위해 중요한 수단이 된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불공정한 구석’으로는 정규직-비정규직 격차, 기업 간 하청관계, 대학 시간강사 처우, 가난한 집 자녀의 명문대 진학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교육환경을 예로 들었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정함을 갖추는 장치로 예시한 게 미소금융과 햇살론, 든든학자금, 사교육비 줄이는 교육개혁,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 등이었다.
결국 정부가 말하는 공정한 룰은 유럽식 복지국가는 아니지만 약자가 딛고 일어설 사다리를 만들어주는, 잘사는 사람이 못사는 사람도 배려토록 유도하는 정도의 제도란 얘기다.
Q2-왜 지금인가
광복절 경축사가 낭독될 때만 해도 공정한 사회는 열대성 저기압에 불과했다. 그러나 8·8 개각에 따른 각료 인사청문회와 외교통상부 특채 사태를 지나며 에너지를 얻어 순식간에 태풍이 됐다. 오강현 대한석유협회장은 지난 6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클린디젤은 CNG(압축천연가스) 못지않게 친환경적이다. 연료 효율은 더 높다. 그런데 서울시는 1대당 2000만원씩 지원금 줘가며 디젤 버스를 CNG 버스로 교체하라고 한다. 이게 공정한 사회인가.”
정부와 정치권은 아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이나 공무원 채용 방식 개선을 얘기하고 있는데, 공정 논쟁은 벌써 이렇게 에너지 업계로 번졌고, 사회 구석구석으로 확산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도 비슷한 구호인 ‘특권과 반칙이 없는 사회’를 외쳤지만 이런 바람은 일지 않았다. 왜 지금 한국은 공정에 매달리나.
김주성 교수의 설명은 이렇다.
“절대 빈곤 시대에는 사람들이 공정함을 찾을 겨를이 없어요. 당장 먹는 게 급하니까. 절대 풍요의 시대는 공정함을 찾을 필요가 없죠. 굳이 따지지 않아도 풍족해요. 공정 욕구는 그 중간 시기에 분출됩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에 도달한 한국이 지금 그 지점에 와 있어요.”
현대사에서 식민 지배를 벗어난 나라의 과제는 국민국가 수립, 경제발전, 민주화 세 가지인데, 이를 모두 이룬 한국이 다음 가치를 찾다가 공정한 사회란 담론을 만났다고 김 교수는 분석한다.
윤 교수는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과 연결지어 말했다.
“아무리 대형 출판사가 마케팅을 했다지만 30만부 이상 팔렸어요, 철학책이. 이건 우리가 지금 정의, 공정에 목말라 있다는 증거예요. 샌델 교수는 2005년에도 한국에 왔어요. 한국철학회가 초청해서 전국을 다니며 네 차례나 특강을 했습니다. 그때 훨씬 진지한 얘기를 많이 했지만 이런 반향은 없었어요.”
윤 교수는 ‘임계점’이란 표현을 썼다. “압축성장의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을 거의 동시에 거치면서 공정함이란 가치는 뒷전에 밀려 있었습니다. 먹고 사는 게, 독재에서 벗어나는 게 더 중요했어요. 그렇게 눌려온 욕구가 더 이상 누를 수 없는 한계에 이르러 터져 나왔다고 봅니다. 그러니 폭발력이 클 수밖에 없죠.”
김 비서관은 ‘공정한 사회’ 담론을 지금 꺼내든 이유 중 하나로 ‘구글 같은 기업이 한국에선 나오지 않는 상황’을 들었다.
“지난 30년간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한 게 거의 없어요. 분명히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아이디어와 재능을 가진 기업이 우리나라에도 있었을 텐데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이건 공정한 게임의 룰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공정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면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어렵다는 얘기죠.”
Q3-몸에 안맞는 옷?
‘공정한 사회’는 신드롬과 함께 그에 못지않은 비판을 몰고 왔다. 화살은 대부분 ‘공정한 사회를 만들자’는 주장이 아니라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겨냥하고 있다. 공정한 사회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인터넷 토론장에선 이런 얘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고소영 내각’과 ‘부자 감세’의 정권이 공정한 사회를 말할 자격 있나.”
“공정한 사회를 얘기한 광복절에 기득권자들을 위한 특별사면이 이뤄졌다.”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성장과 실용을 외치던 정권이 갑자기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
윤 교수는 ‘자연스런 반응’이라고 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이 정의사회 구현을 내세웠을 때 말과 행동이 상반되니까 온통 냉소로 가득했잖아요?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걸 보면 별로 공정해 보이지 않는 정권이란 비판이 나올 수 있죠. 하지만 야당에서도 공정한 사회로 가자는 담론 자체를 비판하지는 못하잖아요. 공정은 실천하느냐 못하느냐를 논박할 수는 있어도 그 자체를 깎아내릴 수는 없는 가치예요.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 이를 ‘굴레’라고 표현했는데, 대단히 오만한 언사입니다. 당연히 가야 할 방향이고 추구해야 할 가치 아닌가요.”
공정한 사회란 어젠다가 나오기까지 준비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광복절 경축사가 공개되기 한 달 전, 집권 후반기 국정 기조를 압축해 제시할 단어를 찾는 과정에서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후 두 달이 채 안돼 불어닥친 신드롬과 비판론 사이에서 정부와 여당은 실천 방안을 찾느라 분주하다.
윤 교수는 이 어젠다의 미래엔 최악과 최선의 시나리오가 모두 존재한다고 말했다.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말을 꺼낸 겁니다. 공정함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는 이미 높아졌어요. 인사청문회와 외교부 사태에서 나타난 것처럼. 국민들로부터 공정 요구가 분출될 겁니다. 그걸 충족시키는 과정에는 진통이 뒤따를 테고요. 과거 불공정 관행에서 자유로운 분야는 우리 사회에 거의 없기 때문이죠. 이걸 다 감수하며 공정한 룰을 정착시키면 한 단계 도약하겠죠. 그렇지 않고 정치적 수사에 그치면… ‘정의사회 구현’처럼 되는 거죠.”
글=태원준 기자, 사진=윤여홍 선임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