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영정 사진
입력 2010-09-09 09:26
옥한흠 목사 장례식이 끝난 뒤 옥 목사의 첫째 아들 옥성호씨가 '아버지의 영정사진'이라는 글을 보내왔다.
사랑의교회 안성수양관에서 쓴 글이다. 그는 메일에서 "이번 장례가 저로 하여금 전에는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게 하고 한번도 보지 않던 것들을 보게 하는군요...."라고 말했다. 비단 옥성호씨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옥 목사의 장례식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했을 듯 하다. 다음은 그의 글.[편집자 주]
아버지의 영정사진은 제가 골랐습니다.
찡그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웃는 것도 아닌 아버지의 얼굴이 담긴 그 영정사진을 보며 친척 중 한 분이 제게 그랬습니다.
“아니, 좀 활짝 웃는 얼굴로 하지 그랬어?”
일리 있는 지적입니다. 그러나 저는 아버지에게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지난 몇 년간 치열하게 암과 싸우신 아버지에게 활짝 웃는 얼굴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아버지가 그 기간 중 항상 찡그리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는 많이 웃었고 또 많이 즐거워도 했습니다. 또 누구는 그랬습니다.
"왜 하필이면 저 사진을 골랐어? 저 사진을 보면 눈물이 나와서 견딜 수가 없어."라고요.
누군가의 얼굴이 나로 하여금 울도록 한다면 그 사진이야말로 그 사람을 가장 잘 표현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눈물 흘리는 그 순간만큼 나 자신과 상대에게 진실한 순간은 없습니다. 진실을 끄집어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또 하나의 진실 뿐이라는 점을 기억한다며 나로 하여금 울게 하는 사진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사진이 아닐까요?
이 사진을 보고 아마도 누군가는 아버지가 희미하게 웃고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또 누군가는 그가 울음을 참고 있는 듯이 보인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두 가지가 다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진을 찍는 순간 아버지의 마음에 무슨 생각이 지나갔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카메라 앞에 선 아버지가 당신의 본질을 드러내는 한 생각을 품는 그 순간을 카메라는 놓치지 않고 잡아냈습니다.
사진을 즐겨 찍으시던 아버지는 어떤 한 순간의 기막힌 장면을 찍기 위해 몇 시간의 수고를 아끼지 않곤 했습니다. 한번은 사슴인가요? 무슨 동물이 나오는 한 순간을 찍기 위해 몇 시간 동안 힘든 포즈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중 그의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거지? 그깟 동물 한 마리 찍기 위해 몇 시간 동안 내가 이렇게 용을 쓰고 있다니. 내가 언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이토록 힘든 자세에서 몇 시간이고 땀을 흘린 적이 과연 있었던가?"
이 생각이 스치는 순간 아버지는 그 날 사진찍을 기분을 완전히 잃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아버지는 곧장 장비를 챙겨 사슴을 기다리던 발길을 미련 없이 돌려 산을 내려왔습니다. 아버지에게 자신이 찍은 수많은 사진들 중에서 스스로 100% 만족한 사진은 하나도 없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는 자신을 향한 카메라의 렌즈에게 그만 자신의 본질을 그대로 노출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카메라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카메라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웃으면서 또한 동시에 울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을 필름에 새겼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정사진 속 아버지는 분명 울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폐암 진단을 받은 2006년 이후 물론 말할 수 없는 육체적 고통을 감내해야 했지만 또한 동시에 영적인 부분에서 많은 생각을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설교를 들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버지는 항상 설교 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뒤에 설교하는 나를 감추시고 오로지 이 설교를 통해 예수님만 드러나도록 해 주소서."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과연 자신이 목회한 그 기간 내내 정말로 옥한흠이 아닌 오로지 예수님만이 드러났는지에 대해 은퇴 후 그리고 암과 싸우기 시작하면서 아버지는 본격적으로 성찰하기 시작하신 듯 합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아버지의 답은 '예수님이 아닌 목사 옥한흠이 더 많이 칭찬받고 드러났다.'라는 뼈아픈 자성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그 사실이 엄연한 실재가 되기 시작한 몇 년 전부터 아버지는 하나님 앞에 가는 그 날을 기대하면서 또한 동시에 걱정했습니다. 그는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받을 상이 별로 없을 거야. 난 이 세상에서 너무 칭찬을 많이 받았어...."
아마도 아버지는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실까봐 두려워하신 것이지요.
“이 봐~ 너, 옥한흠, 너는 세상에서 이미 많이 유명하고 누릴 것 많이 누렸지? 내 아들 예수가 누릴 것도 다 가져가서 너가 누렸으니까 천국에서는 그냥 평범하게 살아!”
어머니 역시 입관 예배에서 이렇게 증언하셨습니다.
“평소 옥 목사는 '하나님은 나를 너무 과분하게 쓰셨어, 그래서 내가 이 땅에서 너무 과대 포장되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두렵기만 하다’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사진 속 아버지가 울고 있는 이유는 이 외에도 하나가 더 있습니다. 아버지는 무엇보다 나날이 회사처럼 운영되는 교회를 보며 가슴 아파했습니다. 무엇보다 세상의 공식 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자본주의'의 공식이 그대로 적용되는 교회를 보며 가슴을 치곤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교회들이 그렇게 된 데에 누구보다 자신의 잘못이 크다고 자책했습니다. 아버지가 비록 각종 교회 성장 프로그램들을 가져다 쓰며 교회를 인위적으로 불리려고 애 쓴 적은 없었지만 그는 자기 자신부터 큰 교회를 맡았던 목사의 한 명으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비록 아버지는 '교회 갱신 협의회'를 통해 각종 비리가 난무하는 교회 선거 속에 작지만 의미있는 '제비뽑기'와 같은 제도를 도입해가며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세속화의 그 큰 물결을 결코 소수의 힘만으로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진 속 울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은 오늘날 교회를 보며 가슴찢는 그의 마음을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 속 아버지는 울고만 있지 않습니다.
그는 희미하지만 분명히 웃고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바라보며 울고 있지만 또한 그런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해 웃고 있습니다.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예수님, 조만간 자신을 품에 안고 영원한 안식과 평안을 주실 그 예수님을 곧 만날 생각에 그는 웃고 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조롱받고 나날이 더 '우리만의 섬', '우리만의 리그'으로 전락하는 교회를 보며 그는 가슴을 찢지만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지금도 교회 곳곳에는 아버지가 땀과 피를 쏟아 양육한 평신도들이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목이 터져라 외치던 '광인론'에 감격해 제자훈련에 목숨을 건 수많은 동역자들이 있습니다. 소명자는 실망할지는 몰라도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던 아버지와 동일한 심정으로 지금도 쓰러져가는 교회의 기둥을 자신의 온 몸으로 지탱하며 주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하나님이 남기신 그의 백성들이 이 땅에 여전히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영정사진 속의 아버지는 지금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들....잘 할 수 있지? 내가 없어도 잘 할 수 있지?"
지금 이 순간 이 사진을 다시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아버지의 이 음성이 분명히 들릴 것입니다.
제 귀에 들리는 이 음성이 여러분의 귀에도 들릴 것입니다.
작지만 또렷하게, 희미하지만 생생하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