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약사의 미아리서신] 옆집 살던 집창촌 언니… 제가 본 첫 죽음이었습니다

입력 2010-09-08 19:08


■ 이미선

‘건강한약국’ 매대 앞에 서면 집창촌 거리가 펼쳐진다. 그는 종일 그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보며 살아간다. 이웃 누구에게나 마음의 문을 열어놓는 수더분한 ‘우리들의 집사님’. 몸만이 아니라 마음도 치료해 주는 상담자이다. 1961년 이곳 하월곡동에서 태어나 이 동네 한성교회를 섬긴다. 숙명여대 약학과를 졸업.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아직도 지난 여름 열기가 식지 않은 듯합니다.

저는 뜨거움을 피하기 위해 더 큰 뜨거움 속으로 들어가 여름을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아름다운 우리 땅을 보고 느끼기 위해 제주도 올레길을 걸었습니다. 귀를 깊게 흔드는 파도소리와 더불어 바위산을 넘기도 하고, 풀들이 우거진 오솔길을 지나기도 하였습니다. 오롯이 혼자서 걸어야만 하는 작은 길이기에 저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던 귀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깨끗한 푸름으로 빛나던 제주 바다의 하늘과 제 고향 ‘미아리텍사스’의 하늘이 같은 하늘임을 깨닫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생기를 불어 넣으신 분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아름다운 자연을 제주에 주신 하나님께서 이곳에도 같은 하늘과 바람과 별을 주셨으니까요.

혹시 정릉천을 기억하시는지요? 지금은 콘크리트와 내부 순환로의 교각으로 덮여 한 줌의 햇볕조차 들지 않은 죽어버린 개울이 되어 버렸지만, 고운 물빛과 개구쟁이의 웃음소리로 환히 빛나던 시절이 있었음을 저는 기억합니다. 사람이 많이 살게 되면서 저의 놀이터였던 정릉천은 오염되기 시작했고, 한 집 두 집 대폿집이 늘어나고 몇 년 만에 수백 집을 이루어 동네가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름조차 국적 불명인 미아리텍사스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성매매지역이라는 꼬리표도 함께 따라 다니게 되었답니다.

옆집에 살던 착한 집창촌 언니가 시커멓게 죽은 입술에 축 늘어진 몸으로 병원으로 실려 가던 모습은 초등학생이었던 제가 처음으로 만난 죽음이었습니다. 과자봉지를 함께 먹던 언니가 왜 그렇게 자신의 삶을 놓아버려야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언니가 불쌍했고, 죽음이 무서워서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연합니다. 끝 모를 억울함이 저를 더욱 눈물나게 하였던 것 같습니다. 열심히 돈을 벌어 고향 부모님께 보내고, 대학생 동생 등록금 대주고 그렇게 사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기에 언니들이 많은 잘못을 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더랬습니다. 예수님께서 죄 없는 자들만 돌을 던지라고 하셨을 때 누구도 돌을 던질 수 없었던 성경 이야기가 유난히 제 가슴속을 파고드는 날입니다.

한데 수십년이 지났는데도 집창촌은 여전히 있습니다. 어제는 일곱 살짜리 아이를 아는 분께 맡기고 일을 하고 있는 눈빛이 맑은 진영(가명)씨가 딸아이 영양제를 사러 왔습니다. 아이를 키워주시며 함께 사시는 할머님께 드릴 영양제도 달라고 하였습니다.

스무 살도 채 안 된 나이에 임신을 하자 남자친구가 떠나가 버렸답니다. 그러나 아이를 버릴 수 없었노라고 힘들게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졸업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부른 배를 움켜쥐고 집을 나왔으며 아무도 몰래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가 마치 메아리처럼 제 귀에 윙윙거렸습니다. 그렇게 낳고 키운 아이가 벌써 일곱 살이 되었으며 내년이면 학교에 간다고 제게 자랑을 하였습니다. 다만 아이의 성이 자신과 같아서 딸아이가 자라면서 힘들어하지 않을까, 고등학교도 못 나온 엄마를 아이가 무식하다고 싫어하면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하였습니다.

진영씨와 그 딸아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만날 수밖에 없는 많은 시련들을 헤치고 한 발 한 발 세상 가운데로 당당히 나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하였습니다.

육년 전 임신 사실을 알고 잠시 고민하였으나 아이를 품고자 하는 마음을 진영씨에게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딸아이를 마음 편히 맡길 수 있도록 심성 좋은 할머님을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돈을 벌게 되면서 온갖 화려함이 주는 유혹에 진영씨가 빠지지 않게 도와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스물 다섯이라는 아직 앳된 처녀이고 싶었을 진영씨의 마음 깊은 곳에 딸아이를 넣어 주시고 묶어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신 예쁜 진영씨 딸아이가 세상에서 만나게 될 많은 환난으로 무릎 꺾이게 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제게 진영씨를 만나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뜻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날입니다. 두루 평안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