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이란 제재안 발표] “교역 결제루트 확보” 이란중앙銀 계좌 국내 개설

입력 2010-09-08 21:42


정부의 대(對) 이란 제재방안에는 외교적 셈법 못지않게 경제적 파장 축소에 심혈을 기울인 대목이 엿보인다. 민감도가 큰 원유를 포함해 이란과의 ‘정상적인 무역’을 위한 결제통로는 틔워 놓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란 사태의 장기화 가능성이다. 제재 대상과 범위 확대 등으로 사태가 악화될 경우 이란과의 교역은 물론 원유의 안정적 공급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어서다.

◇정부, 경제적 파장 축소 총력=8일 정부가 발표한 대 이란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 결의(1929호) 이행조치에는 제재 못지않게 보완책도 비중 있게 실렸다. 핵 확산이나 미사일 개발 외의 통상적인 거래는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대표적인 조치가 한·이란 간 무역대금의 원화결제 추진이다.

임종룡 기획재정부 1차관은 “(달러화 결제가 끊긴 후) 엔화나 유로화로 이란과의 교역이 이뤄지고 있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며 “원화결제 계좌를 만들면 우리 계좌니까 안전하고 항구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국내 정유업체가 이란으로부터 원유를 수입할 때 달러로 결제하던 방식 대신 국내은행에 개설된 이란중앙은행 계좌에 원화로 넣고, 이란중앙은행이 자국통화로 환산해 가져가는 방식이다.

재정부 관계자도 “석유에 대해서는 미국도 제재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며 “(원화계좌는) 아직 이란과 합의된 사항은 아니지만 이란도 정상적이고 합법적으로 교역을 하면 실익이 있으니 협의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러나 석유·가스 부문에 대한 신규투자가 금지되면서 원유 시추시설과 운반선 수출로 이란시장을 공략하던 국내 업체의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는 국내 금융회사와 수출기업이 느끼는 불확실성 해소를 위해 이란과 ‘할 수 있는 거래’와 ‘할 수 없는 거래’를 명시한 가이드라인을 이날 배포해 9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정부, 외교명분과 경제실리 챙겼지만=뜨거운 감자이던 멜라트 은행 서울지점에 대한 처리문제에서 정부는 중징계 방침과 소명 기회를 동시에 전달했다. 이란의 반발과 미국의 요구를 동시에 감안한 결정인 셈이다.

금융감독원이 적발한 멜라트 은행 서울지점의 외국환거래법 위반과 관련해 금융위원회가 내릴 수 있는 징계는 최고 영업정지 2개월이다. 멜라트 은행 서울지점은 이란과 거래하는 국내 중소기업 70%가량의 결제창구였다. 이 결제 수요는 물론 제3국이 서울지점을 경유해 이란으로 송금하던 업무도 막히면 멜라트 은행 서울지점은 당분간 개점휴업 상태가 된다. 다만 기존 중소기업의 결제는 제재대상에서 빠진 이란계 은행과 거래 중인 국내은행을 통하거나 향후 개설 가능성이 높은 원화계좌를 경유할 수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핵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 정부로선 국제사회의 의무 이행에도 앞장서야 하지만 국내 기업의 피해도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입장에 서 있다”며 “멜라트 은행 서울지점의 경우 정부의 딜레마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다른 관계자는 “이란과 미국이 모두 이번 제재안 수위에 만족하기만 바라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정동권 기자 danch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