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시민단체 ‘강제동원 진상규명 네트워크’ 회원들, 한국 찾아 생존피해자 생생한 증언 듣다
입력 2010-09-08 21:13
포즈를 취해달라고 주문하자 그들은 팔을 엇갈려 뻗은 뒤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일본에서 방한한 시민단체 ‘강제동원 진상구명 네트워크’ 소속 회원들이 8일 충남 아산시 둔포면 면사무소에서 이 지역 강제동원 피해자 할아버지 3명과 만났다.
면담을 한 네트워크 회원은 모리야 요시히코(70) 전 도우토 대학 교수와 고바야시 히사토모(68) 사무국장, 가와세 슌지(62) 사무국원. 이들과 피해자들의 면담 조사를 주선한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오병주 위원장이 이 자리에 직접 참석했고, 아산을 지역구로 둔 자유선진당 이명수 의원도 함께했다.
지팡이를 짚고 나타난 박병래(89) 할아버지는 일본인들을 향해 “천리길을 마다않고 와주어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다. 박 할아버지는 1942년 일본 홋카이도 몬베쓰(紋別)시로 끌려갔다. 일본 3대 재벌 가운데 하나인 스미토모(住友)가 운영한 고노마이(鴻之舞) 광산에서 금과 은을 채굴하는 일을 했다. 광산 지하 600m 갱에서 나오다 탄차에 치여 엉덩이뼈를 다쳤다. 넉 달 동안 통원치료를 받았지만 아직도 몸이 불편하다.
박 할아버지는 다른 피해자에 비해 강제동원 사실이 비교적 손쉽게 입증된 경우다. 이는 모리야 교수의 명부 발굴 덕분이다. 모리야 교수는 1978년 고노마이 광산 사무소 창고에서 스미토모가 작성한 트럭 3대 분량의 관련 문서를 입수해 30여년간 강제동원 명부를 분석하고 검증하는 데 진력했다. 모리야 교수는 박 할아버지와의 면담 후 “생생한 증언을 통해 무미건조했던 사료에 생명력을 불어 넣을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은행원 출신의 고바야시 사무국장은 일본 정부가 한국에 공탁금 문서를 제공하도록 노력한 공로자다. 2008년 10월 그가 네트워크 회원들과 함께 도쿄 외곽 국립 공문서관 쓰쿠바 분관에서 발굴한 ‘귀국 조선인에 관한 미불임금 채무 등에 관한 조사(총괄표)’ 등은 조선인 피해자들의 미불임금 실체를 밝히는 단초가 됐다. 고바야시 사무국장은 니가타(新潟)현 수력발전소 공사현장에 동원된 정준모(88) 할아버지와 일본어로 조사를 진행했다. 네트워크 측은 이번 면담 조사를 바탕으로 일본에서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론화 작업에 나설 계획이다.
고노마이 광산에는 모두 2752명의 조선인이 강제동원됐고 이 가운데 충남 지역 출신이 1744명을 차지했다. 이유는 충남 일대가 대표적 금광산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국외동원과는 별도인 국내(한반도)동원 형태로 아산 일대에만 금광 22곳에서 강제동원이 이뤄지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동원은 국외동원과 달리 현행법상 위로금 지원 대상에서 빠져 있다. 강제동원을 다루는 국회 행정안전위 소속인 이 의원은 “국내동원이 예산 때문에 지원대상에서 빠지는 부조리를 입법을 통해 하루빨리 시정하겠다”고 말했다.
아산=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